정치권이 추진하던 중소상인 적합업종 법제화 작업이 딜레마에 빠졌다. 중소기업을 제외한 기업들의 반발이 거센데다, 향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이 체결되면 국제통상조약과 위배될 소지도 크기 때문이다.
27일 국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소상인 적합업종 법제화를 놓고 대·중견기업과 중소기업·중소상인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6개 경제단체들은 중기 적합업종 법제화 등 국회에 계류 중인 15개 의원 발의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중기 적합업종 법제화가 반시장적 독소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경제단체들은 “중기 적합업종을 법제화하면 산업경쟁력이 약화돼 글로벌 외국기업에 안방을 내주고 무역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중견기업연합회는 한 발 더 나가 중기 적합업종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27일 성명을 내고 “(중기 적합업종 제도는) 중소기업을 졸업한 중견기업들의 사업 규모를 축소시켜 다시 중소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는 제도”라고 밝혔다.
연합회는 샘표식품의 예를 들며 “장류사업 하나로 경쟁력을 키워 지난해 처음 중견기업에 진입했는데, 이제 장류 사업을 축소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며 “중소기업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연합회는 현재 조정협의체에서 논의 중인 품목이 중기 적합업종으로 선정되면 중견기업 54개사가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기 적합업종 법제화로 특정 업종을 보호하면 국제통상조약과도 상충될 가능성이 높다.
외교통상부는 “동반위가 시행하는 중기 적합업종 지정은 대·중소기업간 자율적인 협의를 기초로 한 가이드라인으로서 법적 구속력이 없어 한미 FTA와 상충될 소지가 없다”면서도 “다만 제정 추진중인 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 등은 WTO/GATS, 이미 체결된 FTA 및 투자보장협정에 상충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당과 민노당, 창조한국당 등 야당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중소상인 보호법 제·개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중소상인 적합업종 법제화를 요구했으며, 한미 FTA는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