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이 낳은 시장(市長)이 아니라, 시민이 낳은 시장이 떴다.
박원순 변호사는 이른바 ‘무상급식 탄핵’으로 비워진 서울시장 자리를 62일간의 축제 같은 정치 드라마를 통해 낚아 챘다. 새로운 서울시와 정치 변화를 갈망하는 2040세대는 몰표에 가깝게 그를 밀었다. 번드러르 하지는 않지만, 군더더기 없는 변화와 혁신의 말투에 민심은 크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숱한 선거를 거쳐오면서 여당은 엄지손가락 하나 1번, 제1야당은 검지와 중지를 편 V자 2번에 익숙해있었다. 그만큼 숫자와 정치는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박 당선자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쉽고, 익숙해진 2번을 끝내 선택하지 않았다. 무소속 기호 10번을 택했다. 물론 그가 설령 11번으로 나왔든, 12번으로 나왔든 결과는 동일했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10번이란 숫자에 눈길이 가는 것은 10월에 치러진 보궐선거였고, 열 손가락을 다펴 일하고 살피겠다는 그의 진심이 전달됐기 때문 아닐까. 사람들은 후보자의 알량한 엄지손가락과 이번엔 나오진 않았지만 V자를 보고 실망만 해왔던 터다.
재기어린 젊은 유권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망을 통해 “국가대표 등번호 10번 박주영이 마침 투표일에 아스널 데뷔골을 넣은게 좋은 징조”라며 추켜세웠다.
우리 민족성에도 ‘열(10)’은 성의·성심·노력의 의미가 깊이 새겨져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곳 없다’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란 말이다.
어머니 같은 안목과 지혜로 우리나라 수도 서울 구석구석에 묻힌 낡고 병든 시스템을 하나하나 찾아내 바꿀 시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임기내 안된다고 포기하고, 정치적으로 해결 하려 하던 것을 실패할 때까지 한번 해보란 명령이기도 하다. 내년 4월 총선, 12월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유권자들은 중대한 변화를 실감했다.
‘십시일반’의 직접 정치 새 물결이 시작됐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