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IT기기가 넘쳐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낡고 손때가 묻은 음향과 영상기기는 어떤 의미일까.
1877년 에디슨이 만든 최초의 축음기 ‘틴포일’과 1860년대 독일 ‘폴리폰 뮤직박스’, 세계 최초의 텔레비전인 영국의 ‘베어드 30라인’ 그리고 30, 40년 전의 LP판.
사람들에겐 크고 투박한 골동품정도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품들이며, 지금의 최첨단 음향 및 영상기기를 있게 한 발명품들이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소리와 영상을 들려주는 디지털기기에 식상한 사람들에게는 아날로그의 풍미와 향수를 일깨우는 추억의 물건이기도 하다.
음향기기 전문가인 김희선 대경방송(DBS) 대표가 1980년부터 지금까지 30년간 소리와 영상에 관련된 각종 기기들을 모아 눈길을 끈다. 수집품은 총 1만점에 이른다.
음향기기로는 세계 최초 축음기 ‘틴포일’에서부터 스위스 골드문트사 최신형 앰프와 스피커에 이르기까지 세계 음향기기 역사를 한 장소에 모아 놨다.
동전을 넣으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1850년대 ‘폴리폰 뮤직박스’와 파이프가 달린 1850년대에 제작된 ‘베르리너 오르간’은 지금도 독일에서 판매가 되고 있는 제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석 점 밖에 없는 ‘폴리폰 뮤직박스’는 김 대표가 두 점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한 점 가격은 2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23년에 출시된 ‘워터 켄트’ 진공관 라디오에서부터 현재까지 명기로 인정받고 있는 오디오 제품까지 시대별, 종류별로 구색을 모두 갖췄다. 김 대표가 각국을 여행하며 모은 이들 대부분은 지금도 풍만한 소리를 내고 있다.
영상기기는 텔레비전부터 카메라, 영사기 비디오, 각종 방송장비 등 희소성 있는 제품에서부터 최신 제품까지 총망라돼 있다. 세계 최초 텔레비전인 ‘베어드 30라인’은 전 세계에 단 두 점밖에 남아있지 않은 희귀품이다.
수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해외에서 어렵게 구한 몇몇 제품은 수입통관절차가 6월 이상 걸리기도 했다. 구입비도 수십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입니다. 구입할 때 영수증을 모았는데 어느 시점부터는 수집품들이 돈으로 보일 것 같아서 아예 영수증도 모으지 않았어요.”
그가 지금까지 모은 음향기기와 영상기기를 시가로 따지면 30억원에 달한다. 그렇다고 이들 수집품들을 내다 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모으기만 했는데 이제는 번듯한 박물관을 지어 학생들에게는 교육용으로, 어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오는 추억의 장소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전시관 부지와 건물을 제공할 테니 물품을 기증해 직접 운영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오기도 했다. 김 대표는 “개인적으로 보관하다 보니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며 “상설 전시관을 통해 보다 체계적인 관리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