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비리백화점` 횡령ㆍ사기ㆍ배임 기승

은행 부당대출도 만연, 금융실명제 무시는 `예사`

`1%의 탐욕과 부패를 우리 99%가 더는 참지 못하겠다"

미국 월가에서 부도덕한 금융자본을 규탄하는 시위대의 이런 주장은 한국에서도 통할 정도로 국내 금융회사들의 부패 실태가 심각하다.

24일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금융권에서는 상식을 깨는 각종 비리가 망라돼 있다.

금융거래의 가장 기본인 실명확인 무시 사례는 거의 일상사가 됐고, 부당 대출과 횡령, 배임, 사기 행각도 수시로 발생했다. 은행들이 직원의 외국여행 경비를 거래회사에 떠넘기는가 하면 가족과 친척의 개인정보를 수시로 볼 수 있도록 내버려둔 곳도 있었다.

보험사와 증권사는 대주주 부당지원, 이사회 회의록 조작, 분식회계 등 각종 불법 행태가 끊이지 않았다.

공공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가장 엄격한 도덕성과 책임의식이 필요한 금융권에서 마치 `비리 백화점`을 구경하는 듯한 형국이다.

◇부당대출ㆍ신용정보 무단 열람 극성

은행권에서는 금융거래의 기본인 실명확인 과정조차 생략하거나 재무상태가 취약한 회사에 부당 대출을 해주다가 금융당국에 적발된 사례가 많았다.

심지어 직원들의 여행경비를 거래회사에 떠넘기는가 하면 `코리안드림`의 꿈을 안고 입국한 외국인 산업연수생의 예금계좌를 부당하게 정지해 고통을 안긴 사례도 있었다.

외국계 한 은행은 2005년 3월 생명보험사와 보험 판매계약을 체결하고서 자사 홈페이지에서 광고를 해주겠다며 6억8천만원을 받아갔다. 은행의 보험판매 우수직원 27명이 외국여행을 갈 때는 비용 2천만원을 보험사가 대신 부담했다.

은행 직원들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가족과 친척의 신용정보를 1천회 이상 몰래 열어봤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한 은행은 직원 14명이 올해 2월까지 1년4개월간 가족과 친척의 개인신용정보를 1천173차례나 훔쳐봤다가 들통났다. 은행이 개인신용정보 조회권한을 무분별하게 허용한 탓이다. 이 사건으로 직원 3명은 1천만명의 과태료를 물었고 1명은 정직, 1명은 감봉 처분을 받았다.

은행이 기업의 요구로 외국인 산업연수생의 계좌를 막아버려 국가 이미지를 훼손한 사례도 있었다.

한 대형 은행의 지방출장소는 기업체 요구로 2005년 11월부터 약 4년간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의 계좌 1천483개를 사고처리해 예금인출을 막고 통장에 든 돈을 기업에 넘겼다가 적발됐다.

부당 신용대출로 은행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직원들이 무더기로 제재를 받기도 했다. 한 국책은행은 직원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때 자금확보계획 등을 자세히 검토하지 않아 은행에 172억원의 손해를 끼쳤다.

은행 직원이 금융실명제를 무시하는 사례는 아주 흔했다. 한 외국계 은행 지점장은 고객으로부터 자금 약 50억원을 예치하고 해지할 때 실명확인을 한 것처럼 거짓으로 서류를 꾸몄다가 제재를 받았다.

◇계열사 부당 지원ㆍ이사회 회의록 조작 예사

보험업계도 불완전판매, 보험금 미지급, 횡령, 대주주 부당지원 등 불법 행태가 만연했다.

한 손해보험사는 보유 중인 골프회원권 이용실적이 낮은데도 대표이사 취임 직후인 작년 8월 마케팅지원 명분으로 계열사 골프회원권을 대량 구매했다. 13억원 짜리 24구좌를 사들여 무려 312억원을 썼다. 건설 중인 골프장 회원권이어서 즉시 이용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금융감독원은 "당시 회원권 시세가 하락세였지만 인근 골프회원권 평균 분양가보다 약 1.9배 높은 가격에 사들이는 편법을 동원해 대주주(계열사)에게 총 48억원을 부당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이사회는 파행적으로 운영했다. 지난 4~8월 열린 네 차례의 이사회 당시 외국에 체류 중이던 일부 사외이사가 참석해 안건에 찬성한 것으로 회의록을 조작했다. 이 중 한 건은 대주주에 대한 100억원의 신용공여로 보험업법상 재적이사 전원참석, 전원찬성으로 의결해야 하는 안건이다.

이 회사는 기관 경고를 받고 과징금 18억4천만원, 과태료 3천750만원을 냈으며 직무정지와 정직 등 무더기 징계도 받았다.

다른 생명보험사는 사업승인이 완료되지 않은 골프장 법인회원권 10구좌를 사들이며 예치금 220억원을 선지급하는 방식으로 대주주를 부당지원했다. 또 대주주인 ○○산업 회장의 사무실 용도로 임대하며 일부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한 사실도 적발됐다.

또 대형 생보사 한곳은 부동산펀드를 사며 중요한 계약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투자했다가 133억원의 손실을 냈다. 다른 대형 생보사는 무위험 차익거래가 가능한 상품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개정 권고에도 판매 중지 조처를 하지 않은 탓에 2천명 가까운 계약자가 무위험 차익을 목적으로 빈번한 약관대출거래를 시도해 총 155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가공 거래에다 분식회계 지원

금감원이 적발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회사의 위법 행태를 보면 부서 간 또는 펀드 간 방화벽(차이니스월)이 무시되는 사례가 많았다.

자본시장법상 고객 돈으로 운용하는 신탁상품과 증권사 돈으로 운용하는 고유상품 간에는 상호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 해당 상품 운용자 간 정보교류도 있어서는 안 된다. 회사 자산 증식을 위해 고객 자산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운용사 펀드 간에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사유 없이 펀드 편입 주식이나 채권을 다른 펀드로 넘기는 것은 위법 행위다.

그러나 한 대형 증권사는 채권상품부가 보유한 고객 명의의 기업어음을 신탁부에 멋대로 넘겼다가 적발됐다. 1년3개월 동안 수천억원 상당의 기업어음이 양 부서 간에 거래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 대형 운용사는 펀드 간 자전거래 제한 규정을 위반했다. 5개월 동안 도로공사채권 등 한 채권형펀드 편입 채권을 7차례에 걸쳐 다른 펀드에 무단 이전했다.

은행 예금 실적을 부풀리고자 허위 예금거래를 하다 적발된 황당한 증권사도 있다.

한 증권사는 평소 거래 관계에 있던 시중은행의 요청으로 2009년 마지막 거래일에 기업어음을 발행해 모은 자금 5천억원을 예치했다가 1거래일 뒤인 1월4일 곧바로 돈을 찾았다. 거래 은행의 예금 계수만 높이고 바로 찾아가는 방식으로 가공거래를 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 증권사는 저축은행의 분식회계를 측면 지원하는 등 부도덕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저축은행 결산기인 6월 말 신주인수권부사채나 상장주식 등을 이 저축은행에 무단으로 넘겨 유가증권매매이익이 과대 계상되도록 도움을 준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공거래 등은 중징계해야 마땅하지만, 양형 기준이 없어 과징금 부과와 임직원 징계 등으로 제재 강도가 약했던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법인이나 서울지점은 국외 고객의 매매 정보를 동의 없이 무단으로 유출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많았다.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것이다.

한 외국계 지점은 홍콩 등 5개 국외 계열사 직원 수십 명에게 주문시스템 사용자권한을 부여해 이들이 국외 고객의 주문 정보와 체결 내용을 실시간 조회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다른 외국계 법인은 국외의 다른 기관투자자에게 수년간 고객 주문 정보를 제공하다가 적발됐다.

ch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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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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