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오션포럼] 대 정전의 징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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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5일 발생한 정전의 직접 원인이 너무 쉽게 결론 나버린 채 묻혀 버렸다.

 단순 사고에 의한 부분 정전이 아닌 계통 운영 레벨에서의 정전 사고는 그렇게 당일 모든 원인과 결론이 날 정도로 단순한 경우가 세계 어디를 봐도 없다. 일례로 2003년 뉴욕 대 정전 사고는 기술적인 원인 규명에만 2년의 시간과 수백억 원의 비용이 투입됐다.

 이번 순환정전(단전) 조치에 이르는 동안 나타난 현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기존 사고 사례와 유사성을 파악해본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단순히 총 발전 공급 능력이 부족해서 발생한 것이 아닌 ‘동적 제어의 실패’에 의한 것이라는 심증이 있다.

 전력거래소의 사후 발표 데이터에 의하면 정전 당일 오전부터 주파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앙 급전 지시를 받는 발전기들을 풀 가동시켜도 주파수 회복이 되지 않고 급기야 4시 12분에 59.25㎐까지 가는 재앙 상태에 이르렀다.

 오전 11시경에 이미 문제가 인지됐고 1시경부터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했음에도 주파수가 계속 살아나지 않고 요동을 치니 두 손 놓고 단전 조치를 시행한 것이다. 단전 조치에 따른 부하 저하로 주파수가 회복되는 기미도 없이 요동을 치니 절박한 심정으로 그냥 부하 단절량을 막 늘려보다가 어떻게 회복이 된 상황이었다.

 당일 오후 수요 증가 추세가 너무 크고 이것이 예비력을 초과할 것이 명백해 단전을 시행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것은 정성적이며 심증인 것이고, 당일 취한 조치와 그에 따른 결과를 시간 축 상에서 면밀히 검토해 보면 비행기 기름이 떨어져서 화물을 떨어뜨릴 상황까지 가기 전에 기체가 제어 불능이 돼 행한 결과였다.

 단전 조치 후 안정을 되찾은 것이 부하 저감에 따른 직접적 효과인지는 현재로서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일단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이 발전 능력 부족이니 이것을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정밀 분석을 하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기는 하나, 중요한 점은 10년 전과는 계통 상황이 많이 변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이다. 전력망 상황이 기존과 매우 다르게 변한 것 같고 불안정성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전력망 복잡성의 증가에 따른 예측 곤란, 불안정 성향 증가 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이에 대한 고찰이나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

 이런 발전·송배전을 기반으로 한 전력 계통 운영 측면의 문제점 증가와는 별도로 부하의 특성 변화도 매우 심각한 문제다.

 부하 비중이 급증하는 컴퓨터 등 전자기기는 전압이 낮아져도 전력은 그대로 유지되는 정전력 부하이다. 이런 비선형 부하가 증가하면 배전 전압 저감을 통한 부하 저하와 같은 기존의 계통 제어 방식은 효과가 많이 떨어지며 IDC나 반도체 공장과 같은 부하에는 오히려 역 효과가 발생한다.

 발전 측면에서도 DC를 AC로 변환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들은 기존의 계통 제어 방식으로는 제어하기 매우 어렵다. 이번 사고에 비선형 부하나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도 우리가 파악해야 되는 사안이다.

 정전사고를 기화로 중장기적인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 급한 것은 정말 어떤 원인 때문에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지 기술적 측면에서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쓰러졌는데 밥을 적게 먹어서라고 그냥 결론 내고 의사 진단도 받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윤용태 서울대 교수 ytyoon@e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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