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방석에 앉는 꿈. 쉬 떨쳐 버릴 수 없다. 벼락도 돈벼락이라면 기어이 맞고야 말겠다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늘 많은 돈을 가져 ‘넉넉한 집’에서 안락한 처지가 되는 꿈을 그린다.
‘넉넉한 집’은 사람에 따라 그 크기가 다르게 마련이나 소박한 그림을 그려 보자. 어지간한 소박함을 정하기가 까다로운 터라 평균치에 눈이 간다. 국토해양부가 조사했더니 지난해 전국 아파트 한 채 평균 가격이 1억8973만원, 서울에 있는 것은 3억6680만원이었다. 부자가 많다는 강남구의 아파트 평균값은 7억9122만원에 달했다.
돈을 얼마나 잘들 버는지 모를 일이나 3억6680만원은 입 벌어질 액수다. 7억9122만원은 그저 기함할 따름이다. 지난해 가구별 연평균 소득이 4358만원이었으니 서울에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8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버는 족족 모아야겠다. 강남구에 살려면 18년을 고스란히 저축해야 하니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3억이나 8억원쯤은 큰돈이 아닌 것으로 여기는 풍토다. ‘그 정도로 뭘 할 수 있겠어’ 하는 심사가 만연했다. ‘그 정도’를 갖지 못한 박탈감을 사려문 채 ‘나도 그쯤은 가져야겠다’고 다짐한 마음들이 풍토 확산을 부추겼다. 하긴 아파트 한 채 값에 불과(?)하니 참으로 행복한 삶을 위해선 돈이 더 필요하다. 상식적으로도 집 살 능력에는 집 크기에 걸맞은 생활비가 포함되는 게 맞다.
실상은 어떤가. 지난 6월 876조3000억원에 달한 가계부채의 34%쯤인 300조원이 주택담보대출이었다. 아파트 등을 샀으되 빚에 기댄 이가 많다는 얘기다. 갚아야 할 원금은커녕 이자 낼 돈조차 궁한 처지에 놓인 가구가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100가구 가운데 아홉 가구(8.7%)는 연간 소득의 ‘40% 이상’을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쓴다. 수억원짜리 ‘시멘트(집) 돈방석’을 깔고 앉았으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좌불안석한다. 버티다 못해 집을 내놓아도 부동산 거래가 얼어붙은 지 오래라 살 사람이 나서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이 악물고 ‘하우스 푸어(house poor)’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위험이 턱밑까지 찼다. 얼마나 더 버틸까. 가계가 빚에 쪼들려 더 큰 빚을 지거나 파산하고 말 것 같다. 수를 내야 할 텐데 도무지 뚜렷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고통은 고스란히 가계 몫이다. 알아서 감당할 게 너무 많아 가장의 실직이 더 두렵다.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 한다. 집을, 행복한 가정을 지키고자 가다듬은 독한 마음에 떠밀려 나쁜 짓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지경에 이른 책임이 온전히 개인과 가계에만 있을까. 정부도 책임을 통감해야 옳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절실히 느끼라. 가계가 무너지면 나라도 흔들린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같은 특단의 대책은 이럴 때 쓰는 거다. 건설업자 입김에서 벗어나 한번 제대로 공개해보라. 깨어나 정신 차리라.
이은용 논설위원 ey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