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과학. 말 그대로 규모가 큰 과학이다. ‘빅 사이언스’라고도 한다. 많은 과학자·기술자·연구기관을 동원하는 대규모의 종합적·선도적 연구개발을 총칭한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이 필요한 우주개발·원자력·해양개발·공해문제 해결 등이 대표적이다. 거대과학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57년경이다. 미국의 오클리지 국립원자력연구소 중심으로 진행됐던 원자폭탄 제조계획, 소위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초다.
거대과학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대규모 연구비가 소요되기 때문에 정치적, 경제적 영향이 크다. 연구시설을 담당하는 기술자가 실험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정책결정 과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국내에도 거대과학이 이슈다. 원자력, 나로호, 중이온가속기 등이 모두 거대과학 테두리 안에 있다. 최첨단 기술과 지식을 집약한 세계적 연구시설로 인류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전하는 분야다. 공교롭게도 이들 분야가 정치적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중이온가속기를 포함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입지선정에서부터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어 최근 예산배정에까지 정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초 일본 후쿠시마에서 비롯된 원자력 폭풍은 과학적 접근이 아닌 분위기와 정치적 분석으로 변질됐다.
한국을 우주강국 대열로 올려 놓기 위해 추진하는 나로호 발사 사업도 예외가 아니다. 당초 계획은 조만간 진행될 한·러 공동조사위원회에서 2차 발사 실패원인을 규명한 뒤, 내년에 세번째 나로호를 쏘아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나로호 3차 발사여부를 두고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권 입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거대과학은 기존 과학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로 획기적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이 과학 분야에서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자긍심의 근거가 된다. 거대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과학자다. 높은 성과를 위해서는 창조적이고 자율적 과학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관료나 정치적 입김이 적을수록 목적 달성이 수월하다. 거대과학도 마찬가지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