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시 건물이나 산업시설물 등에 전력을 공급할 목적으로 설치된 비상 발전기가 수상하다.
최근 전기산업진흥회 발전기협의체 3차회의에서 9·15 정전사태 당시 국내 설치된 비상 발전기가 60% 이상이 고장이나 운영 관리 부재 등으로 아예 작동이 안 됐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협의체 한 대표는 “국내 설치된 비상 발전기가 설령 멀쩡하더라도 운영 규정이나 작동법을 몰라 최소 60%이상은 방치됐을 것”이라며 “지난달 15일 당시 발전기 업체로 작동법이나 고장 문의가 전화가 많이 왔다”고 밝혔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올 1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전국 1만3518개 시설물의 비상 발전기를 단전상태에서 정기검사를 실시한 결과 9.4%인 1268개가 기기 불량 등으로 작동이 안 돼 운영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전기안전공사 관계자는 “부적합 판정을 받은 발전기는 10% 정도지만, 작동법을 모르거나 발전기 운영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안전불감증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고 말했다.
국가화재안전기준은 비상용 발전기를 비롯한 비상전원은 지상 7층 이상 연면적 2000㎡ 이상이거나 지하층의 바닥면적 합계가 3000㎡ 이상인 건물에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설치된 발전기는 화재진압·인명구조용 비상콘센트설비를 20분 이상 작동시킬 수 있는 용량으로 상용전원 공급이 중단될 경우 자동으로 비상전원을 통해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시설물은 허가받을 당시에만 비상 발전기를 갖췄을 뿐, 발전기 고장이나 작동법을 모르거나 법규화된 운영규정이 없다.
국내 전력계통은 비교적 안정돼 비상용 발전기를 제대로 사용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지난달 15일 실제 전국에 설치된 비상 발전기 대부분이 유명무실했다”며 “정부의 관리체계와 운영규정이 있었더라면 정전대란 시 정상적인 발전기 가동은 물론이고, 전력 예비율이 위험수위가 되면 전국의 비상 발전기를 가동해 (예비율 부족으로 인한) 정전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며 관리운영체계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비상발전기 시설에 대한 운영 규정이 없다.
미국은 비상 발전기에 대해 제조업체와 설치하는 시설물에서도 엄격한 테스트를 진행해 허가 여부를 결정한다. 설치 이후에는 건물 등급에 따라 실제 부하를 걸어 놓고 추가 연료 투입 없이 최소 2시간에서 최대 48시간까지 발전기를 작동시켜 점검한다. 시스템 검사 및 유지보수는 운영 매뉴얼에 따라 1주일에서 6개월 단위로 실시하게 법으로 정했다. 장비 운영 및 관리 교육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김의선 코스탈파워 대표는 “100만대 발전기 중 1대가 안 돌아가도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것”이라며 “발전기 운영규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