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도 많이 변했더라. 아니 너무 바뀌었다고 해야 더 적확한 표현일거야.”
2년 전 호주로 이민간 친구가 최근 국내에 들어와서 3일간 느낀 한국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서울 온 시골 쥐 같다’며 자신을 표현했다.
아침 출근길. 가뜩이나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옆 사람의 팔을 건드리며 신문을 보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이제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신문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보는 사람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인터넷신문을 보거나 영화나 게임에 손놀림이 빠르다.
변화는 지하철역마다 설치된 ‘디지털뷰’라는 웹 검색 키오스크에서도 나타났다. 사람들은 검지를 추켜세워 터치에 정신없다. 웹 서비스는 실로 감탄스럽다. 속도 역시 경이로울 정도로 빠르다. 분야별로 실시간 검색 결과에 맞춰 최신 뉴스를 전하기 때문에 시사성과 적정성 또한 매우 높아 보인다.
반면 신문과 잡지가 다양하게 진열된 가판대를 찾는 손길은 뚝 끊겼다. 사실 더 놀라운 것은 요즘 열에 아홉 사람은 신문 1부의 값이 얼마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몇해 전과 달리 집에서 신문을 보지 않는 가구가 부쩍 늘었음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면 알 수 있다. 아파트 단지 내 재활용품 종이를 버리는 곳에는 신문뭉치 대신 택배 박스 등 포장지만 수북하다.
대학 캠퍼스에도 가판대는 사라졌다. 청춘들은 삼삼오오 햇볕드는 잔디 위에 앉아 휴대폰 들여다 보기에 정신없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요즘 학생에게 종이신문이란 ‘낯선 존재’가 되어 버렸다.
혹자는 종이 신문이 수십년 안에 사회 엘리트 일부가 보는 고상한 취미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추억의 레코드판인 LP나 진공관으로 요즘 유행하는 ‘댄스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없는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종이신문에는 행간의 의미와 편집에 따라 달라지는 특유의 ‘눈맛’이 있다. 인터넷의 휘발성 기사와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넘김의 손맛이 그리운 사람들은 아직도 종이신문을 찾는다.
지금의 가판대는 눈에 잘 띄라고 빨간 옷을 입었지만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거리의 우체통과 같은 신세다. 사람들이 많이 사서 보라고 매장 앞에 툭 튀어나오게 배치한 주인장의 의지가 밉지 않다. 다만 그 ‘꽂혀 있는 쓸쓸함’이 애틋할 뿐이다.
김동석기자 d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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