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82인치 LCD 패널을 옥외용 대형 디스플레이로 각광받고 있는 디지털정보디스플레이(DID)용으로 상용화하겠다며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우리에게 ‘전광판’으로 익숙한 DID는 그동안 발광다이오드(LED)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전 세계에서 길거리 응원전이 펼쳐진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잘 드러났듯이 옥외용 대형 DID도 갈수록 고해상도가 요구되고 있다. 오는 2010년엔 규모가 34억달러가 넘는다고 하니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다.
82인치 LCD 패널 양산으로 DID 신시장을 개척한다면 과잉생산과 가격하락으로 혼란스러운 세계 LCD산업 판도변화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82인치는 현존 최대 생산설비인 7세대 라인에서나 생산이 가능해 시장만 개척된다면 삼성은 이 분야에서 독점적인 위상을 확보할 수 있다. 모니터용에 이어 TV용 LCD로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대만과 일본 업체들의 추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악화되고 있는 수익성도 상당 수준으로 개선할 수 있다. 호전된 수익성을 바탕으로 기존 모니터 및 TV용 시장에서도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후발 추격사를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의 히든카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필요충분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우선 초대형 LCD 제작에 소요되는 장비·부품·소재 등 후방 협력사가 있어야 한다. 또 전 세계를 누비며 DID 수요처를 발굴하고 판매해 줄 전방 협력업체도 필수적이다. 삼성이 국내 중소 디지털 TV업체와 공동으로 ‘DID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것도 이 같은 연유에서다. 삼성전자가 전후방 협력사와 성공적인 상생협력 모델을 만들어 세계 LCD산업 판도를 일거에 정리하는 쾌거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이번 ‘DID 프로젝트’가 한 차원 발전된 대한민국 LCD산업계의 공조·상생모델의 본보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DID 시장 개척에 성공하려면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LGPL)가 공조체계를 구축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 수천만원대인 82인치 이상 DID는 양산에 따른 위험성이 클뿐더러 이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삼성전자와 LGPL 두 곳뿐이다. 무엇보다도 세계 양대 LCD업체인 삼성과 LGPL은 한국을 생산기지로 삼고 있어 전후방 협력사를 공유할 수 있는 폭이 넓고 이로 인한 시너지 효과도 막대하다.
LCD 시장은 지난해부터 업체 간 생존경쟁과 국가 간 주도권 쟁탈전이 어우러지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대만과 일본은 치열한 전투를 치르기 위해 합종연횡을 서두르고 있다. 또 합종연횡의 뒤에는 LCD 패널 경쟁력의 원천이 되는 장비·부품·소재 협력사의 육성도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소니는 삼성전자와 합작한 S-LCD에서 만들어진 LCD 패널의 후공정에도 자국 협력사 부품을 채택하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세계 LCD산업이 치열한 격전장으로 변한 것도 따지고 보면 선발 주도업체인 삼성전자와 LGPL이 공조보다 소모적인 경쟁에 치중한 탓이 크다. 서로 다른 규격의 설비투자와 규격 전쟁으로 경쟁국 업체를 원군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이들의 추격을 초래했다. 한때 왕성한 사업을 벌였던 국내 LCD 모니터 업체들마저 이로 인해 대만업계에 밀려나면서 양사는 주요한 전방 원군을 잃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삼성과 LGPL이 협력사를 철저히 양분해온 정책도 지금과 같은 난국에서 수익성 악화를 견디기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튼실하지 못한 협력사들이 가격완충 역할에 한계를 보이고 있고, 이로 인해 일부 협력사는 적자로 돌아서거나 도산에 직면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삼성과 LG가 지난 1분기에 규모와 기술에서 한수 아래인 대만 업체보다 수익성에서 뒤진 것은 양사가 대만·일본업체와의 공조 및 협력사 경쟁력 강화에 미온적으로 나선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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