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대장금이 연이어 아시아 문화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장동건은 타임지 커버에 올랐다. 욘사마는 일본 열도를 훑고 새 대륙 중국에 상륙했다. 한류 효과에 따른 관광부문의 수입만 2004년 한 해에 1조3000억여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쯤 되면 한류는 이제 거대한 문화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한류의 지속화는 분명 우리가 자랑할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 드라마에 울고 웃고, 주말마다 여럿이 뭉쳐 영화 보러 다닌 공덕이 쌓여 한류가 생성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두 놀라워 하는 한류에 무엇을 더 보태면 좋을까. 전략적으로 본다면 한류 지속화를 바탕으로 하는 질적 고도화와 세계화가 절실하게 와 닿는다. 한류에 담기는 콘텐츠의 수준과 수익성, 영향력 등을 더 끌어올려 궁극적으로 한류의 주역인 한국인의 생업과 의식, 문화지수에 실질적으로 기여를하게끔 만들 방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한류 고도화와 관련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이른바 ‘만드는 손의 독립’이다. 한류를 있게 한 드라마와 가요, 영화와 같은 문화콘텐츠를 만드는 손인 외주 프로덕션과 창작자들이 거대 방송사에 예속돼 있는 낡은 구조가 한류의 고급화를 가로막고 있다.
방송사들이 절대 ‘갑’으로 불리는 우월적 지위에서 콘텐츠 창작자들을 호통치는 억눌린 분위기에서는 노상 재벌 2세, 출생의 비밀이 얽히고 설킨 드라마 말고는 기대할 게 없다. 검증된 시청률 공식에 사로잡혀 진부한 내용만 고집한다면 실험적이고 참신한 스타일 창조를 연구하는 풍토가 조성되기 어렵다. 방송계 한 원로가 “한류에는 이미지만 남았고 내용인 콘텐츠가 없다”고 꼬집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류의 고도화는 참된 세계화로 이어져야 한다. 세계무대에서 정부와 민간이 역할을 나눠 효과적으로 대응하자. 정부는 한류 비확산 지역과 반한류 움직임에 대해 실상을 파악하고 적절한 외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민간 창작자, 사업자들은 이미 형성된 한류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고객 관리와 마케팅 프로그램을 실행하며 고객 유지에 진력해야 한다.
특히 콘텐츠 인접영역인 디지털·IT·가전·뷰티산업·관광 등과 연계해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선도하는 ‘트렌드 세터’ ‘룰 메이커’ ‘스타일 창조자’로 인정받아야 한다. 선진국처럼 현지 교민, 민간단체 등과 함께 한국 문화를 테마로 한 원정대를 조직하는 것도 필요하다. 70년대 오일쇼크 호기를 틈탄 일본이 스모·스시·분재·애니메이션 등을 앞세워 브로드웨이나 샹젤리제 거리를 휘젓고 일본발 화류를 연출한 다음 도요타와 혼다, 소니를 성공적으로 전파시킨 전략도 좋은 본보기다.
이러한 체계적인 움직임을 강화한다면 내년 독일 월드컵에서 소시지만큼이나 김치가 인기를 끌고 붉은악마가 전세계적인 뉴스메이커가 되며 대장금의 김치 비법이 다시 화제가 되는 한류의 선 순환적 고도화·세계화가 조금씩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한류는 기본적으로 콘텐츠의 힘이고 콘텐츠는 열린 사회에서라면 자연스럽게 소통되는 문물교화, 즉 문화의 흐름을 타기 때문에 어떻게든 물꼬만 터준다면 넓은 무대로 뻗어나갈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혹시라도 한류의 흐름과 문물교화를 막아온 빗장이 우리에게 없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문화는 자유롭게 경쟁국으로 뻗어가야 하고 외국 문물은 되도록 차단하는 게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게 바로 물꼬를 막는 빗장인 셈이다. 외국 영화의 자유로운 상영이나 외국자본 투자와 유입을 방송산업에서 전면적으로 막겠다는 규제라면 이 또한 빗장과 같다. 인위적으로 쳐놓은 장벽이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데는 당장 효험이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퇴조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불안한 조짐이 우리나라의 자랑인 드라마와 게임 콘텐츠를 만드는 20, 30대 젊은 기획자·작가·프로그래머 등의 작업 현장에서까지 감지된다.
한류의 주력군이 외국 시장과 문화를 모르고 매우 편협한 우물 안 콘텐츠를 만들기 일쑤다. 아니면 그냥 음성적으로 알게 된 외국 것을 모방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한다. 이들이 문물교환을 하지 않고 수출만 강조하는 한류에 도취해 정작 우리 문화의 본성이나 세계 속 위상과 의미를 모른 채 혼이 빠져버린 껍데기만을 좇는 것도 큰 결점이다.
멋진 마술을 하듯 한류가 어느새 4차로 일방통행길을 닦아 놓았다. 이 길 위에서 왕성한 문물교환을 실천하여 양방향 16차로, 32차로의 대로가 크고 넓게 열리기를 기원한다.
◆심상민 호서대 디지털콘텐츠비즈니스학과 교수 ssmin@office.hose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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