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아픔은 이제그만

요즘 겪고 있는 정보통신부의 곤혼스러움이 말이 아닐 듯싶다. 잇따라 내놓은 정책들이 하나같이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인터넷중독 대책방안, 제한적 실명제방안, 주민번호대체수단 개발계획, 이동통신 단말기 보조금 금지개선안 등이 그것이다. 여기저기서 도마질 당한 흠집들은 보기에도 안타깝다. 그 내용들이 실망스럽다며 들려오는 주변의 입방아들은 민망스러울 정도다.

 더 심각한 게 있다. 도마질을 하는 쪽에 너와 내가 따로 없다는 사실이다. 반대와 질타의 무게에 기업과 소비자 간 구분이 안 된다. 정치인과 일반인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내세운 주민번호 대체수단 개발 계획만 해도 그렇다. 추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사업자 측의 반발은 예정돼 있다손 치더라도 개인(네티즌)들까지 반대한다는 건 어찌 설명해야 할까.

 단말기 보조금의 제한적 허용방안에 대한 반응은 차라리 가관이다. 보조금이 다시 허용되면 이동통신 3사 가운데 한 곳쯤은 분명 득을 볼 수도 있을 텐데 환영하는 사업자가 하나도 없다. 모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본능적인 궁금증이 생긴다.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런 정책은 왜 줄지어 나오는 걸까? 아무리 좋은 선의의 정책이라도 수용자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건 문제다.

 지혜나 여유가 부족했다는 뜻만이 아니다. 발표 전에 이해 당사자들을 불러 한번쯤 넌지시 떠보는 절차는 정책의 완성도에 관한 차원이다. 일이 터지고 나서 정책을 반대한 사업자를 불러 반대하고 질타하는 것이 잘못됐다며 ‘깨는’ 것은 화풀이일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뒷말도 많다. 주민번호 대체수단을 도입하겠다고 한 것은 제동이 걸린 실명제 관철을 위한 책략이라는 얘기가 공개토론회에서 나왔다. 단말기 보조금 허용방안에 대해서는 단말기 공급자들의 말만 들은 게 아니냐는 노골적인 불만도 터져나온다. 궁시렁거리는 뒷말이란 그 진위를 떠나 정책에 대한 불신을 의미한다 .

 에둘러 지적할 필요가 없다. 밀어붙이기 식 관행이 여전히 정책 당국자들에게 잔존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정부정책이 일방으로 전달되는 시절이 아니다. 요즘같이 투명한 시대에 밀어붙이면 뭐든 탈이 나게 돼 있다. 이번에 탈 난 것들은 제도적(법적) 정당성 여부에 앞선 실효성의 문제다. 실효성이 의심을 받는데 이해당사자들을 불러다 깨고 두들긴들 한번 구겨진 정책 당국의 권위가 설 리 만무하다.

 이런 마당에 정통부에는 지금 규제기관으로서 처리해야 할 이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방송사업자의 통신시장 역진입 허가문제는 통신사업자들의 사활이 걸려 있는 사안이다. 010번호 전면 통합이나 사업자 간 상호접속료 조정문제는 차세대 서비스나 신규 융복합서비스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무선인터넷망 전면 개방이나 통신 도감청 문제 등도 뇌관을 건드릴 수 있는 현안들이다.

 뿐만이 아니다. 와이브로 서비스는 사업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투자 규모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거의 모든 산하기관과 기업들이 모토로 내세운 유비쿼터스 정책은 여지껏 초안조차 못 만들었다.

 이런 이슈들은 그 처리 과정에서 새로운 사고와 접근방식이 요구되는, 이른바 차세대에 관한 것들이다. 시간에 쫓긴다고 진지한 성찰 없이 밀어붙이는 정책은 위선이다. 배경과 상황에 대한 안일한 인식은 무책임한 처사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중앙정부의 정책이 때없이 흠집당하는 것은 모두의 슬픔이라는 사실이다.

◆서현진 IT산업부장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