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봄 어느날. IBM 시스템 엔지니어였던 디트마르 홉은 새 인생을 설계하기로 마음 먹는다. 이 모험에 동료이자 프로그래머인 하소 플라트너가 동참한다. 72년 당시 컴퓨터 하면 괴물처럼 덩치가 큰 메인프레임이 주류였다. 이에 반해 소프트웨어는 컴퓨터를 사면 당연히 끼워주는 부속품이었다.
성공하는 사람이 그렇듯, 두 사람은 별볼일 없던 이 소프트웨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여기에 괴짜라 불리던 재무 회계 소프트웨어 전문가 볼렌로이더와 시라, 헥토르 세 사람이 가세해 결국 공동 창업자는 다섯 명으로 늘어난다. 마이크로소프트보다 3년 앞선 72년 4월 1일, 독일 소도시 볼도르프 교외의 한 주택에서 그렇게 SAP는 태어났다.
밤을 새우는 것이 다반사였던 창업자들은 1년 만에 첫 작품으로 재정회계프로그램 ‘시스템 RF’를 발표, 호응을 얻었다. 이어 79년에는 메인프레임용 소프트웨어 ‘R2’를 개발했다. 82년에는 현 SAP 최고경영자인 헤닝 카거만이 입사했다. 카거만 입사 10년 뒤 SAP는 대도약을 하게 된다. 클라이언트-서버 환경을 겨냥한 ‘R3’를 92년 내놓았는데 대박이 터졌다. 최대 수요처인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매출이 급증했다. 급기야 97년에는 10억달러(12억달러)벽을 넘었다. 미국 언론의 찬사도 잇따랐다. ‘바보’ ‘얼간이’라고 비아냥거리던 소리가 쏙 들어갔다. 미국 속어로 sap는 ‘바보’ ‘얼간이’를 뜻하기 때문에 SAP는 곧잘 ‘얼간이’로 불리곤 했다. 지금도 SAP는 ‘에스 에이 피’가 아닌 ‘샙’으로 읽으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SAP는 ‘System, Applications and Products의 약어다. 현재 SAP는 세계 120개국에 2만6000개나 되는 고객사를 갖고 있다. 작년 매출은 95억달러였으며 올해는 100억달러 돌파가 예상된다. 이런 SAP의 한국 진출 10년을 기념하기 위해 카거만 CEO가 오늘 방한한다. 그는 SAP의 성공 비결에 대해 “33년 동안 기업 소프트웨어라는 한 우물만을 팠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미국 업체들이 판치는 세계 컴퓨터 시장에서 유럽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SAP. 한국의 자존심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
국제기획부·방은주차장 ejb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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