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한류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짧은 기간에 이른바 한류벨트인 베이징, 도쿄, 타이베이로 출장을 다녀왔다. 방송위 연구센터 박사진과 함께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고 질문지 등을 미리 준비하긴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다행히 필자가 십수년 전 KBS미디어 대표로 재직할 당시 한국 프로그램 수출을 위해 견본 테이프를 들고 뛰던 지역이라 익숙하다는 것 하나가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류는 지속될 것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흐른다. 시청자가 선호하는 우수 콘텐츠는 전파를 타기 마련이다.

 세 나라 모두 한국 드라마를 재미있어 한다. 재미도 있으면서 교훈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의 방송 편성 관계자는 한국 드라마는 고리타분한 윤리를 강조하기보다 살아 있는 교육을 한다고 강조한다. 계속 보다 보면 철학 같은 게 배어난다는 말이다.

 중국은 광고제도 등 경영 측면에선 우리보다 개방적이면서 자국에 이롭지 않은 수입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나라다. 재미와 교훈의 배합으로 지속되고 있는 한류가 앞으로 교육적인 의미에서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

 일본에선 배용준·이병헌·장동건·원빈·권상우 등 이른바 빅 파이브 외에도 이영애 등 한류 스타 인기가 예상 외로 높았다. 일본의 40, 50대 여자 시청자들은 쥰아이(배용준을 사랑하는 마음)와 함께 에너지 넘치는 한국 드라마에서 잃어버린 꿈을 찾고 있었다. 미디어 업계에서 수십년간 종사해 온 일본 방송계 한 지인은 “한류는 거품이 아니고 패션도 아니고 취향이다”며 낙관했다.

 또 세 나라 시청자들은 우리 드라마의 정감 어린 대사 처리, ‘가족’이라는 기댈 수 있는 언덕 등에 공감하고 있음을 느꼈다. 여기에 다매체 다채널 시대를 맞아 각 나라 미디어 업계의 과감한 편성전략과 현지 사업자의 사업다각화도 한몫 한다. 일례로 일본에선 겨울연가 DVD를 보관용과 감상용으로 나눠 판촉활동을 하고 있는데 실제 그 전략이 먹힌다고 한다. NHK는 수신료가 높은 BS디지털 등에 방송을 끝내고 재방 후 다시 지상파를 통해 방송을 내보내 증폭 효과를 올린다.

 대만도 예외가 아니다. 월∼금요일 횡편성, 시간대 이동 재방송, 주말 종편성, 채널과 프로그램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홍보전략 등을 높이 살 만했다. 그리고 DVD, 만화, 캐릭터 사업은 기본이고 관광객 모집 등 사업다각화에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정말 눈여겨볼 만하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지금까지 한류 붐은 누가 뭐래도 국내 PD, 감독, 작가, 연기자 등의 열정과 유통 일선 담당자들의 공이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첫째, 급등하는 구입가가 문제인데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 공급에 따라 형성되지만 한류 지속을 위해선 장기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사실 필자가 현직에서 프로그램 수출입을 담당할 때 미국 영화 가격이 다락같이 올라 대안으로 찾은 게 90년대 중반 대만 드라마 ‘판관 포청천’이다. 당시 한국에는 대만류, 홍콩류가 잠시 불었다.

 대만 지상파는 높은 가격 탓에 한국 드라마 방송을 포기한 상태다. 대만은 2만달러에 육박하는 한국 드라마를 방송했다가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국내 방송사와 프로덕션 고위 관계자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현지 드라마 제작비 50% 선에서 해외물을 계속 사들인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전에 미국물 대신 ‘판관 포청천’을 방송했던 것처럼.

 둘째, 프로그램 상호교류 문제다. 우리 교류 상대는 자존심이 센 나라들이다. 중국 모 신문에선 ‘한류는 치욕’이라고 쓰기도 했다. 대만에선 연예인 노조에서 야단을 쳤다. 일본은 한국 지상파에서는 아직 일본 드라마를 방송하지 않는다며 아쉬워한다. 국제화 시대에 ‘일방적’이라는 건 통하지 않는다. 큰 틀에서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일부 명쾌하지 못한 저작권 문제, 투자 유치 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무엇보다 방송사와 제작사들이 우수 콘텐츠를 제작할 경영 여건 마련에 세심한 배려와 고민을 해야 한다. 일본, 대만 등은 드라마 제작비가 높고 시청률이 보장되지 않아 드라마 편성을 줄여 나갈 수밖에 없었다.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젠 이로움을 주면서 공통의 가치와 이익을 추구해 한류를 넘어선 아시아류 본산이 될 꿈을 꿀 때가 됐다. 소성에 만족하지 말고 더 큰 기여를 고민할 때다.

◆박준영 방송위원회 삼임위원 jypark@kb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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