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컴퓨터프로그래머협 창립
“세상에 안 되는 일이 어디있어, 아직은 그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을 뿐이지.”
“나는 지금 경쟁 상대보다 부족하다. 그런데 그게 꼭 약점인가? 그래서 더 좋아질 수는 없는가?”
예나 지금이나 늘 잊지 않는 두 가지 생각이다. 처음 학원 문을 열었을 때 내가 상대보다 부족한 것은 무엇보다도 신문에 광고를 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대학가를 찾아다니며 말로 설명하면 어떨까? 컴퓨터가 어떤 것이고 배우면 무슨 이익이 있는지를 직접 이해시키고 알린다면 되지 않겠는가?
고생은 되겠지만 해 볼 만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날부터 대학생을 상대로 컴퓨터를 설명하고 다녔다. 자존심 상하는 일도 있었지만 관심있는 학생들이 단체로 부탁하는 일이 생겼고 학과별로 특강을 요청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며 직접 마주쳐 보니 컴퓨터에 관한 이해가 너무나 부족함을 알 수 있었다. 좀더 빠른 시간내에 컴퓨터의 중요성을 알리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학에서 컴퓨터 학술 강연회를 개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의 강연회는 저명 인사들이나 초청받는 자리인데 나이도 어리고 내세울게 없었던 내게 기회가 올 리가 없었다. 연사가 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컴퓨터프로그래머협회’를 만들기로 했다. 협회를 만들려면 먼저 회원을 모은 후 회장을 추대하는게 순서이겠지만 그러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순서를 조금 바꿔 회장을 모신 후 그 분의 도움으로 회원을 모으기로 했다. 다행이도 과학기술부 기획관리실장으로 컴퓨터 분야의 발전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시던 문영철 선생께서 나의 무례함을 오히려 젊은이의 열정으로 칭찬해 주시며 쾌히 승낙해 주셨다.
회장이 추대되자 그 분을 따르던 많은 이들이 회원에 가입했고 얼마되지 않아 협회가 출범했다. 나는 부회장으로 선출돼 강연회 연사로 초대받게 되었다. 연세대에서의 첫 강연회는 대성공이어서 이후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세 번 강연을 하기도 했다. 한국일보·중앙일보 등에 연재기사를 쓰고 컴퓨터 전문서적을 집필하는 일이 그때부터 시작됐다.
어느덧 나는 유명인사가 됐으며 컴퓨터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렸다. 그토록 대단해 보였던 경쟁 학원들은 서서히 문을 닫거나 다른 사람에게 인수됐다.
돌이켜 보면 광고비용이 없었던 게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 상대보다 부족한 것이 약점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유있는 사람은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으며 그것이 큰 약점이 된다. 만약 경쟁학원처럼 좋은 시설로 광고를 할 수 있었다면 시장을 나누어 가지며 편할 수는 있었겠지만 새로운 시장을 확장시키며 기회를 갖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안 되는 일이라고 미리 단정해버리기 때문이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운 것이며 공이 바닥에 닿으면 튀어오를 일만 남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성공은 도전하는 자의 것이다.
jse@choongang.co.kr
사진: 지난 81년 단국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특강을 했다(연단에 있는 사람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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