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저녁 오퍼레이터가 시스템 백업을 받지만 시스템 관리 책임자였던 필자는 토요일에 늦게까지 남아서 개인적으로 백업을 받아 금고에 보관하곤 했다. 기계적으로 백업을 받는 오퍼레이터가 잘못된 백업 테이프를 정상인 것으로 알고 보관하는 경우에 대비해 중요한 주말의 데이트 시간을 희생해야 했다.
우리는 업무에서나 일상생활에서 알게 모르게 BCP(Business Continuity Planning)를 실천하고 있다. 비가 올 확률이 60%라는 일기 예보를 들으면 들고 다니기가 거추장스러워도 우산을 갖고 나간다. 겨울에 사용한 기억은 거의 없지만 차를 바꿀 때마다 빙판길에 대비해 체인을 구입, 트렁크에 넣고 다녀야 안심이 된다.
BCP란 예기치 않은 위험이 발생했을 때 비즈니스 운영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론을 말한다. 방법론은 위험을 평가하고 영향을 분석해 사전 예방과 사후 대응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일련의 절차를 포함한다.
국내에서 BCP에 대한 관심은 9·11 테러를 비롯해 대구 지하철 사고 및 해킹으로 인한 인터넷망 중단 등 국가적인 재난을 겪으면서 크게 높아졌으나 막상 그 도입은 크게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BCP는 보험의 특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즉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의 위험에 대비해 돈을 써야 하는 것은 우선 순위가 낮아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글로벌화되고 복잡해지며 스피드화되는 오늘날의 비즈니스 환경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험에 노출되고 있으며, BCP 도입의 우선순위를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둘째는 BCP에 대한 개념의 혼란이다. 올해 3월 영국의 BCI(Business Continuity Institute)에서 종업원 50인 이상인 250여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32%가 BCP와 DRP(Disaster Recovery Plan)를 거의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단순히 IT백업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14%가 된다.
이것은 DR, BCP, EM(Emergency management) 등 위험 관리에 대한 다양한 개념이 서로 중복되며 뚜렷한 차별성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재난관리에 대한 용어 및 개념은 무수히 많으며, 위험을 관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비즈니스 영속성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BCP는 솔루션이 아닌 하나의 비즈니스 이슈의 차원으로 정의해야 한다. IT 분야만을 생각한다면 RTE, SOA, BCP가 모두 새롭게 이슈화되고 있는 큰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BCP의 예기치 않은 위험이라는 범위가 자연재해, 인적재해, 시설재해, 보안재해, 경영위험까지 광대하게 정의돼 BCP 적용의 주력 대상을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BCP 방법론은 범용성을 가지지만 각 분야에 특화돼 상세정의가 가능해야 차별화 및 특성화로 BCP 도입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BCI 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0% 이상이 BCP가 다뤄야 할 분야로 IT와 텔레커뮤니케이션 분야를 꼽고 있다.
BCP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점증하는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보험이다. 다양한 잠재 위험 중에서 비즈니스에 가장 영향이 큰 것들을 골라서 발생을 최소화하고 대처하기 위한 BCP 투자는 비용의 효과성이 높아야 한다. 운전기사는 교통사고보험에 가장 먼저 가입하고 탄광의 광부는 암보험에 가장 먼저 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업들이 자신의 핵심 역량에 대한 보험의 필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BCP 컨설턴트들은 각 분야에 특화된 BCP 보험 상품을 개발해 적극적으로 홍보함으로써 BCP 도입을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한만호 (주)데이타포스 대표컨설턴트 mhan@mano.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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