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최충엽 신지소프트 사장(2)

(2)모바일 원천기술 GVM 개발

내가 2001년 신지소프트와 인연을 맺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과감한 경영혁신이었다.

당시 신지소프트는 뛰어난 발전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과감한 사업구조조정과 인적쇄신을 통한 경영혁신을 하지 않고는 생존기반을 확보하기 힘들다고 판단, 새로운 인재를 발굴, 물갈이에 나섰다. 하지만 엄청난 내부반발에 부딪혔고 2001년 말, 끝내 내부 갈등이 폭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사장직을 포기하고 전략기획이사를 맡으며 백의종군에 나섰다. 좋은 비즈니스모델을 없앨 수는 없었다.

하지만 3개월 후 후배들이 구조조정의 뜻을 이해하며 사장직을 맡아달라고 요청, 다시 대표이사직을 맡았다. 이러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치열한 내부갈등은 오히려 비온 뒤 땅이 굳어지듯 내부 결속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신지소프트의 초창기 사업 아이템은 휴대폰 임베디드 게임이었다. 90년대 말까지 휴대폰은 음성통화 외 다른 용도는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신지소프트는 휴대폰에 오락성을 겸비한 임베디드 게임의 사업성을 확신한 후 집중적으로 모바일 게임을 개발했고,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텍 등 유명 단말 제조사에 납품했다. 이는 기존 음성통화가 목적이던 휴대폰이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발점이 됐다.

임베디드 게임을 개발하면서 얻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휴대폰에서 게임콘텐츠를 다운로드, 게임을 즐기게 해주는 GVM(Game Virtual Machine)을 개발했다. SK텔레콤에 사업제안을 했지만, 처음에는 우리의 제안에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제안서는 4개월이 지나, 빛을 보게 됐다. SK텔레콤에 새로 온 담당자가 우연히 책상 속의 신지소프트 제안서를 발견하고 연락을 해온 것.

그러나 초기에는 이렇다 할 콘텐츠가 없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모바일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금영과 연락이 닿았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모바일 킬러 애플케이션인 노래방서비스를 금영과 함께 개발하게 된다.

GVM 서비스는 노래방 콘텐츠와 3개의 게임으로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노래방 서비스는 대히트를 쳤다. 그동안 외국의 기술을 들여와 IT를 발전 시켰던 것에 비하면 원천기술을 독자 개발해 세계 시장를 선도 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를 만드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후 나의 고민은 무선인터넷 산업을 키우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콘텐츠개발사와 같이 커야 했다. 이를 위해 GVM 콘텐츠 개발자의 개발지원을 위해 온라인 기술지원 사이트를 오픈하는 등 개발사에 대한 기술 지원을 회사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파트너 회사의 수익과 성장을 우선 고려하는 신지소프트의 경영 방침은 이때부터 확고히 자리잡아 우리회사의 가장 큰 철학으로 자리잡았다.

또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통한 고객만족에도 주력했다. 나는 신지소프트가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고객 및 관련 산업의 성장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나의 예상은 적중했고,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인내와 끈기로 밀어부친 결과, 신지소프트는 모바일게임 다운로드 솔루션 부문에서 업계 1위를 고수하게 된다.

국내 무선인터넷 산업이 지난해 기준 2조원 규모로 성장한 배경에는 신지소프트의 원천기술 GVM이 그 시발점이 됐다는 것에 우리는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choicy@sinjisoft.com

사진: 2001년 7월, 신지소프트 최충엽 사장(왼쪽)이 신소프트웨어 상품대상 시상식에서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가운데)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