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이달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벤처 패자부활프로그램이 2개월 정도 늦어질 것이라는 소식이다. 이 프로그램을 뒷받침할 ‘벤처 패자부활 보증제도’는 양대 신용보증기관인 기술신용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이 내부 규정을 개선하면서까지 마련했으나 실제 1차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벤처기업협회의 도덕성 평가기준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1차 도덕성 심사를 맡은 벤처기업협회는 개괄적인 도덕성 심사 평가 틀을 마련했지만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이달 벤처기업협회 산하 윤리위원회를 확대 개편해 실질적인 도덕성 심사기구를 만들고 심사기준도 확정, 상반기에 테스트를 모두 마치고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프로그램이 빨리 시행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쳐 오류 없이 운영될 수 있도록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가동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그래야 패자부활제로 인해 다시 야기될 수 있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없애면서 진정으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번 실패했던 벤처기업인이 경험이나 기술을 활용해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패자부활프로그램은 정부가 올해를 ‘벤처기업 부활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내놓은 신벤처 정책의 핵심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의 성공 여부에 따라 신벤처 정책도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이 프로그램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실패한 벤처기업인에 대한 재기 지원제도는 미국식 벤처정책이다. 미국에서 이런 제도를 통해 실패한 기업인이 다시 세운 회사는 절반 이상이 3개월 안에 흑자를 기록하는 반면, 신규 창업 기업의 흑자비율은 3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벤처의 본고장인 실리콘밸리에서 ‘실패에서도 배운다’는 정신이 정착된 지 오래지만 재창업 기업의 경영성과가 그만큼 월등함을 말해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벤처 사업에 한 번 실패하면 신용불량자로 몰리는 것은 물론이고 보증인까지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많아 사실상 재기가 어려웠다. 특히 개인워크아웃를 통해 신용이 회복되더라도 ‘전과’는 남아 있어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패한 벤처기업인이라도 도덕적 해이가 없었다면 정부가 나서 부채 유예는 물론이고 보증 지원까지 해준다는 것은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벤처산업의 부활과 활성화를 위해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문제는 도덕성을 평가하는 심사를 얼마나 정직하고 객관적으로 하느냐에 있다고 본다. 망한 벤처기업인 가운데 정직한 사람을 고른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도 1차 도덕성 심사를 벤처기업인의 모임인 벤처기업협회가 한다고 하니 자칫하면 부실심사가 될 소지도 많다. 물론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만들고 신용보증기관에서도 심사하는 등 철저히 검증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심사는 인간이 하는만큼 자칫 인간관계에 의해 팔이 안으로 굽을 수도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심사가 투명하게 적용되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심사위원들이 실패한 벤처기업인의 도덕성에 대해 보증을 해주는만큼 이들이 다시 실패할 경우 돌아올 엄청난 파장을 고려하는 인식제고가 필요하다.
벤처 기업인도 반성해야 한다. 정책의 틈을 파고들어 기술 개발보다는 ‘머니게임’에 열중했던 일부 행태가 재현되지 않도록 업계 스스로 풍토를 일신해야 한다. 이것이 재발한다면 벤처 신뢰성 상실은 물론이고 모처럼 살아나고 있는 경기에도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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