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엄지족의 `휴대폰 커닝`

‘효리폰’ ‘윤도현폰’에 이어 요즘엔 ‘수능폰’이 올 하반기 최대의 히트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해상도에 3G 첨단제품도 아닌 막대 모양의 휴대폰이 시선을 모으는 것은 아마 기발한 쓰임새 때문일 것이다. 이 단순한 형태의 휴대폰이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커닝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전자 커닝 페이퍼’로 인기를 끌 것이라는 것은 정작 생산업체도 몰랐을 것이다. 휴대폰까지 간단없이 ‘수능 도우미’로 변신시키는 잔머리는 역시 세계 1위의 IQ를 자랑하는 IT강국의 국민답다. 정보화의 최대 수혜자인 엄지족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커닝은 분명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남의 노력을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절도 행위이기 때문이다. 커닝심리의 밑바닥에는 관음증과 유사한 ‘엿보기 충동’이 숨겨져 있다. 호기심은 많은데 능력이 없다 보니 남의 것을 엿보게 되고 아무런 죄의식 없이 베낀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시학’에서 모든 예술 작품은 자연의 미메시스(mimesis)라고 간파했다. 간단히 말하면 자연을 커닝해 베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마음 속에는 커닝을 하고 싶어 안달하는 DNA가 잠복해 있는 모양이다.

 조선시대 왕조실록을 보면 과거시험과 관련한 부정 사례가 매우 많다. 공자 왈 맹자 왈 도덕군자 행세하는 선비들이 갓 쓰고 도포 자락을 개고 점잖게 앉아 가자미눈으로 연신 옆 사람의 답안지를 기웃거리는 코미디가 하나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커닝하다 들키면 곤장 100대에 도형 3년이라는 중형이 내려짐에도 불구하고 시험 부정은 끊이지 않았다고 하니 커닝의 유혹이 얼마나 달콤한가를 알 수 있다. 과거장에 시험 족보를 풀이한 서책을 숨겨 들고 가거나 시험답안 바꿔치기, 대리시험, 왈패를 동원해 옆 사람을 윽박질러 답안 훔쳐보기 등등 양반댁 오렌지족의 커닝 수법도 오늘날과 다를 바 없어 실소마저 자아내게 한다. 무과의 경우도 기사(騎射) 때 과녁에 맞지도 않았음에도 불구, 감독관이 눈을 질끈 감고 합격 판정 북을 두드리는 등 부정이 판을 쳤다. 물불 안 가리고 일단 붙고 보자는 비뚤어진 심사는 조상님네도 지금의 우리와 별 다른 게 없었던 것이다.

 ‘불륜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던 휴대폰의 수능 도우미 둔갑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닐 것이라고 경찰은 추측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커닝이 전국적으로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모바일시대는 엄지족의 전성시대다. 엄지손가락 하나로 타인의 시선을 피해 교묘하게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다. 휴대폰의 성능 향상으로 수많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일 대 일 혹은 일 대 다로 소통된다. 휴대폰으로 고해상도 동영상을 전송하고 게임을 즐기고 TV시청도 가능하게 된 세상이다. 정보의 소통은 바람직하지만 정보의 ‘맨홀 뚜껑’까지 열린 채 방치된다면 정보 범람으로 인한 악취 때문에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정보통신부에서는 수능폰 재발 방지를 위해 각종 시험 장소에 전파 차단장치 설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상 뾰족한 대책이 없는 모양이다. 이런 솔루션을 개발해 중국이나 일본 같은 입시지옥인 나라에 ‘최첨단 수능폰’과 함께 수출한다면 꽤 쏠쏠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이번 커닝사건은 개인휴대단말기인 휴대폰의 씀씀이가 인간의 마음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리 편리한 이기라고 하더라도 잘못 사용할 경우엔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흉기가 된다. 휴대폰이 수능 부정에까지 동원되는 한심한 작태를 보면서 우리의 정보화가 비생산적인 쪽으로 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감마저 든다. 엄지족의 요술방망이인 휴대폰이 다음엔 또 어떤 도우미로 변신해 우리를 놀라게 할지 가슴을 졸이게 한다.

 서용범논설위원@전자신문, yb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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