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강국을 건설하자]석학에게 듣는다(1)해럴드 크로토 英 서섹스대 교수

사진; 헤럴드 크로토 영국 서섹스대 교수는 “나노기술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산업화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또한 현존하는 모든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오는데 일조할 것입니다.”라고 나노기술의 미래상을 설명했다.

 “나노기술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산업화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또한 현존하는 모든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오는데 일조할 것입니다.”

헤럴드 크로토(Harold W. Kroto·66) 영국 서섹스대 교수는 나노기술의 미래상을 이렇게 설명하며 말을 시작했다.

“그냥 일상에 아무렇게나 배치된 책상이나 각종 플라스틱 물건들. 이런 것들의 메커니즘을 순수한 과학적 욕망으로 알아가는 것이 기쁨입니다. 우리 인체 안의 단백질과 각종 효소 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내고 이들의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일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크로토 교수는 10년 전 탄소 60개로 이뤄진 풀러렌 발견 후 요즘은 나노기술과 바이오기술 융합 분야에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백발의 노인이지만 그의 연구에 대한 변치않는 열정을 발산하며 기술 융합 분야에 대한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는 요즘 인체나 세포, 단백질의 자기 조립(Self Assembly)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크로토 교수가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가장 관심을 갖기 시작한 부분은 바로 과학교육이다.

“나노기술을 널리 알리려면 어린 학생들에게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교육 프로그램과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는 85개의 과학 프로그램을 개발해 BBC를 통해 52개의 강연과 토론회를 방영할 만큼 과학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이 있다. 그의 과학교육의 지론은 ‘과학을 보다 알기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영국의 인기 축구구단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후원을 받아 축구공과 풀러렌 분자 모형을 비교하며 나노과학을 쉽게 전파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지론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 등을 방문해 어린이들과 함께 풀러렌 분자를 조립식 블록으로 만들면서 과학자에 대한 꿈을 키워주었다고 한다.

“어린이들은 축구공과 비슷한 모양을 한 풀러렌의 분자 모형을 보면서 이 물질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무궁한 상상력을 발휘합니다. 풀러렌을 축구공과 헷갈려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게만 느껴지는 것을 아주 친근한 것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는 한국에서 나노기술을 발전시키려면 과학교육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 나노기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널리 확산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주문했다.

“한국의 나노 연구자들은 최근 양질의 논물을 유명 저널에 발표하고 인용횟수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어렵지만 근접국가인 일본과 중국의 엄청난 연구자 수와 비교하면 한국 연구자들이 더 많은 노력을 해야합니다.”

크로토 교수는 지난 8월 열린 나노코리아 행사에 참석차 내한해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에 방문해 나노기술을 이용하는 한국기업들의 생생한 모습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삼성은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전계효과디스플레이(FED) 개발하는 등 나노기술을 이용한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한국 기업의 나노기술 상용화에 칭찬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국내 연구진이 순수 과학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학교육에 관심이 높은 그는 영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 현상 해결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사나 의사는 과학자와 같은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합니다. 시장의 힘이 이공계 졸업생에게 직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크로토 박사는 정부가 이 문제에 적극 개입해 대학들이 이공계 학위와 프로그램을 개설하도록 유도하고 그에 따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만약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인 로버트 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과 같이 한국 대학의 총장 자리에 대한 제안에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질문에 ‘아니오(No)’라고 답하며 그저 일반 대중에게 과학을 널리 알리는 일이 본인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10월 또다시 한국을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크로토 박사는 한국 어린이들에게 나노와 과학기술을 쉽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희망한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크로토 교수는

 세계 3대 NT 거장 중의 한 명으로 199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헤럴드 크로토교수는 로버트 컬(Robert F. Curl), 리처드 스몰리(Richard E. Smalley)와 더불어 풀러렌(fullerene)을 발견한 인물이다.

풀러렌은 탄소 원자 60개로 이루어진 분자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약물전달시스템 등 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 등에 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새로운 물질이다. 헤럴드 크로토 박사는 풀러렌을 발견해 전세계에 나노기술 연구에 대한 기대와 투자를 촉진한 주인공이다.

노벨상 수상 후에도 그가 여전히 관심 있는 분야는 나노세계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기초기술 분야다.

◆‘실험실의 축구공, 풀러렌’

버키볼이라고 하는 풀러렌(Fullerene)은 가장 최근에 발견된 탄소 원자 60개(C60)로 이루어진 축구공 모양의 분자 구조를 갖는 물질이다.

풀러렌이 버키볼(Bucky ball)이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분자 모양이 건축가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의 작품인 ‘지오데식 돔(geodesic dome)’과 닮았기 때문이다. 지오데식 돔은 전통적인 건축물보다 훨씬 더 적은 재료를 사용해서 훨씬 더 큰 공간을 얻을 수 있으며 여기에 매우 가볍고 안정되며 견고한 구조까지 제공해 풀러렌과 비슷한 성격을 보인다.

풀러렌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탄소물질은 흑연·숯·다이아몬드 등 3가지였다.

과학자들은 흑연 조각에 레이저를 쏘았을 때 남는 그을음에서 완전히 새로운 탄소물질인 풀러렌을 발견했다.

1991년 4월 X선을 이용해 이 분자의 모습이 확인됐고 헤럴드 크로토, 로버트 컬, 리처드 스몰리 등 3명의 과학자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풀러렌을 발견하지 11년 후인 1996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들의 발견은 과학계 나노기술 연구의 기폭제가 됐다.

1991년에는 가늘고 긴 튜브 모양으로 탄소 원자들이 배열된 분자가 발견됐다. 또 세계 각국의 연구진들이 다양한 나노튜브들이 합성하기 시작했다.

풀러렌은 다이아몬드만큼 강하면서도 아주작은 물질을 새장처럼 가둘 수 있으며 미끄러운 성질이 있다. 또 다른 물질을 삽입할 수 있게 열리기도 하고 튜브처럼 이어질 수도 있다.

풀러렌은 탄소 원자끼리 강하게 결합해 반응성이 적은 대신 인체에 독성이 없는 특징이 있다.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의약 성분의 저장 및 체내 운반체 등으로 이용하려는 약물전달시스템(DDS)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아주 미세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조그만 양으로도 매우 예민한 반응을 하는 풀러렌의 특성을 이용하려는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여러 금속 원자를 섞어 도체, 혹은 초전도체로 이용하거나 수많은 풀러렌을 서로 연결해 새로운 섬유나 촉매, 그리고 각종 센서로 응용하는 등 풀러렌의 이용 분야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또 단단하고 날카로운 절삭 도구나 아주 단단한 플라스틱을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점에서 풀러렌은 전지·윤활제·초전도물질·고분자·촉매·컴퓨터기억소자·우주항공 환경 등의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 올 차세대 나노소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인순기자@전자신문, in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