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강국을 건설하자]나노코리아를 이끄는 사람들(10)조영호 KAIST 교수

“멤스(MEMS:초미세기계가공) 소자 및 시스템을 나노 수준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제작 오차를 줄이고 잡음을 없애는 것이 선결 과제입니다. 나노 멤스에 바이오 기술을 접목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조영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디지털나노구동연구단장(48·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은 나노 멤스 산업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키기 위한 해법을 생명체 기본 단위의 구조와 동작 원리에 근거한 바이오 기술에서 찾고 있다.

멤스라는 용어조차 생소한 지난 1990년 멤스 기술의 발생지인 미국 버클리대에서 극미세 정전 구동기를 개발, 멤스 분야에서 최초의 박사 학위를 받은 조 교수는 국내외적으로 이 분야를 개척하고 선도해 온 인물로 꼽힌다.

그런 그가 바이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5년 전 멤스 소자의 성능과 정확도를 높이는데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면서부터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멤스 분야에서 일본, 미국에 이어 3위의 기술력을 갖고 있습니다. 반도체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나라에서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주저하지 않고 한국행을 선택한 조 교수는 귀국 후 10여년간 극미세 관성 센서와 극미세 구동기 연구 개발에 매달렸다.

그러나 멤스 소자를 마이크로(1마이크로=100만분의 1)미터급 수준으로 구현하는 단계에서 발생한 제작 오차와 잡음은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 특히 나노 기술을 이용한 극미세 부품 및 시스템 개발에서 이같은 문제는 피해 갈 수 없는 난제로 남았다.

“작은 것과 정밀한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나노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밀도입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나노 기술이더군요. 기술로 정밀하게 제작하는 것이 어려운 이상 새로운 연구 방향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조 교수는 이같은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눈을 돌렸다.

유전체, 단백질 및 세포 등 나노(1나노=10억분의1)미터나 마이크로미터 크기에 해당하는 생명체 구조와 동작 원리를 공학적으로 분석, 이를 나노 멤스 부품 및 시스템 구현에 적용시켰다.

가령 사람은 어떻게 근육을 움직이는가, 벼룩은 어떻게 높이 뛰는가, 파리는 어떻게 날아다니는가 등이 주요 관심 대상이 됐다.

사람이나 곤충, 물고기를 이루는 생명체 구조들이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을 가졌지만 동일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데 착안한 것이다.

“비록 오차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구동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매달렸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으면 뭐 합니까, 산업에서 실제로 활용될 수 있어야 진정한 기술이지요.”

이같은 조 교수의 나노·바이오 융합 기술 시도는 2000년 디지털 나노 구동 연구단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연구단은 그동안 극미세 생체 근육의 구조와 동작 원리를 응용, 광신호 및 바이오 물질 정보를 나노미터 수준으로 제어할 수 있는 생체 근육을 모사한 ‘디지털 나노 구동기’(근육칩)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구동기는 극소형이면서도 광자의 손실이 적고 고정밀 제어가 필요한 고속 광통신·고밀도 광저장기·고화질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IT 산업분야와 첨단 의약·의료 산업 등에 다양하게 활용, 관련 산업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미토콘드리아가 주름벽을 이용해 단위 세포당 파워를 극대화하는 것에 착안, 휴대폰용 충전 배터리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아직까지 파워 측면에서 화재 경보기의 배터리 센서 수준에 불과하지만 조만간 충전 배터리의 성능을 갖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술을 산업화로 일궈내기 위해 실용적인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는 그는 2002년 새로 설립된 ‘바이오시스템학과’의 나노감응시스템연구실에서 바이오 기반 나노센서 및 구동기 개발·산업화에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렇듯 멤스 기술을 한국에 뿌리내리게 한 조 교수에게는 항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귀국 직후 당시 국내 대학과 연구소, 기업 등에 생소했던 멤스를 처음으로 소개한 데 이어 1994년에는 국내 최초로 멤스 대학원 강의를 개설하고 1999년에는 대한기계학회에 멤스 분과를 설립, 미국기계학회 멤스 분과보다도 앞서 학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이같은 대내외적인 활발한 연구개발 활동으로 2002년에는 과학기술부로부터 ‘올해의 나노 바이오 과학자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에는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가 주관하는 국제 최고 수준의 멤스 학술대회인 ‘IEEE 국제 멤스 컨퍼런스’대회장으로 선임돼 한국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앞으로 나노 멤스 산업화에 비전을 제시하는 국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나노 멤스 산업화를 하기에 시설이나 인력, 경험 측면에서 좋은 인프라를 갖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조금만 힘을 실어준다면 충분히 반도체 산업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조 교수는 “나노·바이오 융합 기술 분야는 기술 발전의 상승 작용은 물론 새로운 산업 창출이 기대되는 분야”라며“정부도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창의적인 연구인력 양성과 학제적 연구팀 구성 등에 관심을 갖고 정책적인 제도 마련과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신선미기자@전자신문, smshin@

[국내 나노 바이오 전문가들]

나노기술과 바이오기술을 접목하는 나노-바이오분야는 신생 기술이다. 이 분야의 기술연구를 위해 화학, 생명공학, 기계, 의학, 전자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연구자들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대학과 벤처기업들이 관련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KAIST 최인성 교수(화학과)와 이상엽 교수(생명화학공학과)는 최근 포자 표면 발현기술과 마이크로 접촉 프린팅기술을 접목해 나노 바이오 센서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세포의 표면에 단백질을 발현시켜 박테리아 및 바이러스 등 극소량의 병원균을 검출하거나 병을 진단할 수 있는 원천기술이다. 이들은 고온·저온 등 일정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세포를 센서에 안정적으로 장기간 동안 고정시켜 짧은 시간에 생체 분자를 원하는 미세 패턴 형태로 생성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또 탄저균 등 여러 종류의 박테리아를 표면에 고정화할 수 있는 플랫폼기술을 개발, 고집적화된 질병 및 병원균 검출에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나노 바이오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바로 의료부문이다.

나노바이오 연구성과는 ‘랩온어칩(Lab On a Chip)’이라고 불리는 진단치료 장치에서 잘 나타난다. 랩온어칩은 손톱만 한 크기의 칩에 실험실에서 수행하는 모든 작업을 할 수 있는 장치다. 피 한 방울로 암을 진단하고 세포에 들어있는 백혈구나 세균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분야에 가장 앞선 곳이 바이오벤처인 디지탈바이오테크놀러지다. 이 회사는 살아있는 세포를 하나 하나 셀 수 있는 세포개수측정기를 개발했다. 이 측정기는 혈액에 들어 백혈구 수를 셀 수 있는 장치로 1나노리터(1나노=10억분의 1)이하의 혈액으로 분석작업을 할 수 있다.

서울대 초미세생체전자시스템연구센터는 인간의 감각기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 보조할 수 있는 초소형 신경칩, 신경보철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 센터는 생체세포물질의 조성과 구조를 분석할 수 있는 유세포분석기를 연구하고 있다.

국책 사업단인 과기부의 21세기프론티어 지능형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단장 박종오)은 1999년부터 2003년 ‘캡슐형 내시경(MIRO #1)’과 자신의 질병을 손목시계형 PC를 통해 자가 진단할 수 ‘마이크로PDA(MICO)’를 개발하는 성과를 올렸다. 사업단은 134건의 국내외 특허출원을 했고 이 중 16건을 등록했다. 사업단은 자율주행 로봇 내시경을 개발했으며 이미 사체(死體)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에도 성공, 국내외 대기업이 이 기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마이크로시스템개발사업단은 이 같은 성과를 이어받아 2단계(2003년 7월∼2005년)부터 운동기능을 첨가한 차세대 캡슐 내시경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이를 이용하면 인체 구석구석을 통증 없이 볼 수 있으며 마이크로의료진단 시스템에 접합, 손목에 찬 PC만으로 병을 자가진단할 수 있게 된다.

김인순기자@전자신문, insoon@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