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을 전공한 자네는 왜 고시 공부를 계속 안하고 취업할 생각을 했는가?” “제 가정 형편도 어려운데다 어머니께서 계속 공부하는 걸 반대해서 취업하려 합니다.”
지난 77년 5월 (주)경방의 면접장에서 내가 받은 질문과 답변의 한 대목이다.
제주도 남제주군 남원읍 신례리라는 중산간 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법조계에 계셨던 고모부의 영향을 받아 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 꿈을 실현하고자 사범 대학에 진학해 교사가 되길 원하시는 어머니의 뜻을 저버리고 법대에 진학했으나 졸업 후 1년이 넘도록 고시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열심히 공부했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으로 1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고시 ‘패스’는 마음먹은 만큼 쉽지가 않았다.
졸업 후 1년 안에 고시에 합격하지 못하면 취업하겠다고 다짐한 어머니와의 약속과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살림을 꾸려가시는 어머니의 짐을 덜어드려야겠다는 마음에 결국 취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주변 환경도 있었지만 당시 내가 법관을 포기하고 취업을 택한 것은 나에게는 내 인생에서 첫번째 결단이었다.
다행히도 당시는 박 대통령의 수출 주도형 경제 정책이 활발히 진행돼 매년 두자릿수의 경제 성장을 기록하던 터라 취업하기에 좋은 시절이었다. 특히 무역 회사와 건설 회사가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때였다.
솔직이 요즘은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취업이 ‘하늘에 별따기’로 힘들어 배부른 소리라고 비난받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젊어서 그런지 취직도 뭔가 명분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역사와 전통이 있고 민족 자본으로 설립된 (주)경방의 문을 두드렸고 합격해 77년 6월 1일부터 ㈜경방과의 인연을 맺었다. ㈜경방에서는 경리 업무로 직장 생활을 시작해 전산과 기획 부서를 거쳤다. 경리 업무는 회사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고 전산 업무를 하면서 변화의 속도가 빠른 IT세계를 접하게 됐다. 경리·전산 업무를 할때까지만 해도 내가 첨단 산업의 하나로 신유통 채널로 당당히 자리매김한 홈쇼핑 업체의 사장을 맡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경방에 입사해 현재까지 약 27년여 세월 동안 두세장의 가슴 속에 묻어둔 사표도 있고 외부 유혹도 있었지만 평생 이력서를 한번밖에 쓰지 않고 꿋꿋하게 (주)경방과 관계 회사에서 자리를 지켜왔다. 그동안 내가 갖고 있는 실력보다는 선후배와 동료의 도움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인정 받으면서 지내온 걸 보면 대학졸업후 결정한 나의 첫번째 선택은 훌륭했다고 믿고 싶다.
daejong@wo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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