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명문>사람들이 이미지를 향해 간 까닭은

정과리 저 「문명의 배꼽」 중

『왜 비주얼일까. 종이를 쓰레기통 속으로 튕겨보내며 문화의 혁명을 휘몰아가는 바람이 문자의 시대에는 모든 감각이 언어로 여과되었다면 이제 모든 감각들은 시각으로 수렴된다.

(중략) 시각은 직접적이면서도 무해하고 무해하면서도 전체를 장악하게 해준다. 그러니, 알겠다. 시각만이 문자를 대신해 기호의 대상으로 군림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문자를 빼놓으면 그것만이 세상을 대상화할 수 있고, 따라서 전체적 파악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미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시각 기호들뿐이다.

오늘날 이미지의 범람, 이미지의 요란 방정은 이로부터 오는 게 틀림없다. 생생한 이미지, 확연한 이미지, 내 눈 아래 춤추는 이미지… 이미지는 순수-전체-대상이다. 이미지야말로 주체의 주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토포이(topoi)다.

이미지를 생산하는 활동은 「보다」라는 동사다. 그것의 사전적인 정의는 「눈길을 통해 대상을 알거나 감상하다」다. 다시 말해 이미지는 앎의 대상, 주체가 눈길 속에 가두어 마구 조몰락거릴 수 있는 대상이다. 이미지를 통해 주체는 진실을 소유한다.』

메모: 이미지에 열광하는 사람이나 이미지에 반대하는 사람이나 최후의 알리바이는 현실성이다. 앞선 사람은 이미지가 곧바로 생생한 현실감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에 그것에 열광하고, 뒤처진 사람은 그것이 기껏해야 가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부단히 고발한다. 이미지의 홍수시대에 영상읽기의 대중교육이 부재한 현실은 또다른 의미에서 대중을 문맹화시키고 있다.

<고은미기획조사부장 emk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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