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ERP는 만병통치약?

기업의 업무 혁신 솔루션인 전사적자원관리(ERP)가 국내에 소개된지 얼추 10년 가까이된다. 본격적으로 도입된 시점은 5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ERP 전신인 MRP까지 거슬러 올라갈 경우 국내 ERP 도입 역사는 의외로 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정보기술(IT) 산업은 오죽할까. 특히 ERP 분야는 IT산업의 핵심으로 그동안 고성장세를 구가했다. 삼성전자나 현대전자 등 국내 굴지의 기업은 물론 일반 중소기업들도 ERP를 경쟁적으로 도입할 정도로 활황 국면이다.

하지만 ERP에 대한 기업의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특히 뚜렷한 목표 의식이나 체계적인 도입절차 없이 ERP 도입이 이뤄지는 게 다반사다.

ERP 도입 기업들은 ERP가 기업의 모든 현안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주는 만병통치약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기업의 현재 조건을 생각하지 않고 이상론적인 시각에서 ERP에 접근, 뜻하지 않은 장벽에 봉착하거나 컨설팅 과정을 통해서 바람직한 ERP 모델과 기업의 비전을 세워놓고도 정작 시스템 구축 과정에선 요구사항을 수시로 바꾸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같은 현상을 놓고 업계 전문가들은 『ERP가 성공하기 위해선 기존의 업무 관행을 혁신하려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하며 『무조건 ERP만 도입하고 보자는 식의 자세는 이젠 지양해야할 때』라고 충고한다. 아무런 문제 의식 없이 ERP를 도입할 경우 컨설턴트나 ERP 공급업체와 불필요한 마찰을 빚을 뿐 아니라 프로젝트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국내 굴지의 기업인 K사는 요구사항의 잦은 변동으로 프로젝트의 완료 시점이 계속 연기되고 있고 P사는 투입 인력이 배로 늘어났다. C사는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립, 아예 솔루션 공급업체를 바꿔버렸다.

물론 ERP 프로젝트를 둘러싼 잡음의 책임을 ERP도입 기업에 몽땅 전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ERP도입 업체들은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비전을 수립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기업의 마인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RP 도입에 앞서 진정 자신들의 기업에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진지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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