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한표준연구소의 역할

남북경협과정에서 필요한 각종 기술표준 연구와 컨설팅을 담당할 (가칭)북한표준연구소가 이달중 설립된다는 소식이다.

새로 설립될 북한표준연구소는 이질화된 남북한의 산업구조를 연결하는 기초작업의 하나로서 북한의 「국규」 등 기술표준체계를 연구하고 남한기업의 대북진출에 따른 표준 컨설팅서비스를 맡게 된다고 한다. 이 연구소는 또한 앞으로 등장하게 될 표준에 대해서도 남북간의 이해차이를 좁히고 단일 표준화를 정착시키는 데 여러가지 연구활동을 펴나가게 될 것이라고 한다.

연구소 설립을 주도할 한국표준협회에 따르면 북한의 각종 기술표준 규격들이 남쪽에 공개된 것은 극소수여서 전자·기계 등 제조분야의 대북진출 기업들이 애로를 겪고 있는 데서 이같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현재 남한에는 국가표준인 KS를 포함한 각종 기술표준 3만2000여종이 있으며 북한에는 기술표준체계인 1만300여종의 국규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남한에 알려진 국규는 10% 미만인 1000여종에 불과하여 대북진출 기업들의 시행착오를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남한의 경우 KS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다시피한 상태에서 여러 표준들이 등장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아직도 정무원 산하 국가규격위원회가 일관되게 국규를 강제적용하는 상황이어서 남북한 모두에게 정확한 사전지식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현재 남북한 사이에는 현장의 엔지니어들이 사용하는 간단한 도면기호에서부터 여러 상이한 점이 많아 의사소통에 적지 않은 애로를 겪고 있다고 한다. 또한 컴퓨터 등에서 용어의 표기나 이해가 서로 달라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문제점들은 남북경협이 아직까지는 간헐적이며 단순 임가공 수준에 머물러 있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교류의 수준이 높아지고 전분야로 확대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또한 경협이 장차 민족 내부의 거래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걸림돌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표준연구소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보다 명확해진 셈이다. 우선 급하게는 남북한간에 존재하는 수많은 표준들을 정리해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선행시켜야 할 것이다. 이어서 동일한 분야에 대해 남북한 표준체계가 어떻게 다른가를 연구하는 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세번째는 그 결과를 관련 기업들에 제공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이고 경협이 하루 바삐 본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하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반면 북한연구소가 사뭇 경계해야 할 일도 없지 않다. 그것은 기존의 상이한 표준들을 무리하게 단일화하려 한다든가, 당장의 이해관계를 따져 새로운 표준을 주도하려 함으로써 불협화음을 자초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의 특성상 상이한 표준을 단일화하거나 제3의 표준을 제정하는 식의 발상은 과거의 경험에서 보듯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 새로운 기술표준의 정립 역시 다양한 논의와 시장논리 그리고 향후 전망 등을 따져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신중해야 할 일인 것이다. 새로운 표준에 대한 작업은 앞서 언급한 역할들을 충실하게 해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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