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부정만이 능사가 아니다

 며칠 전 일본의 한 일간경제지의 문화란에서 「사라져가는 근대화 유산에 빛을」이라는 글을 감명깊게 읽은 일이 있다. 명치유신 직전에서부터 태평양 전쟁 종료에 이르는 시기에 일본산업의 근대화 과정을 보여주는 각지의 갖가지 유산을 찾아가 정리해 보존하고 그 역사를 조명하는 작업을 하는 이가 작업내용과 그 의의를 간략하게 소개한 글이다.

 인간 이하의 작업조건으로 악명 높았던 고도(孤島)의 금광산, 여공애사(女工哀史)가 엮어진 어느 제사공장, 탄광과 제철소와 화학공장 등등 환경오염과 노동분쟁으로 얼룩진 산업근대화 유산은 오래 기억하고 싶은 밝은 모습만은 아니었다. 풍요로운 오늘날의 일본사람들로서는 눈을 돌려 잊어버리고 싶은 어두운 유산이 대부분이다. 그 어두운 곳에 그 사람들은 빛을 쬐어 밝혀 보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IMF사태를 겪고 있는 현 시점에서 지난 날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딱할 만큼 많은 잘못을 저지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선택은 아니었지만 조국은 분단됐고 냉전의 최전방에 처해 나라를 꾸려나가면서 내린 잘못된 판단의 흔적과 인권억압의 상처가 주변에 생생히 남아 있다.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고 남북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국가의 자존심마저 저버린 일들도 한둘이 아니다. 이른 시일 안에 남들과 대등하게 경쟁하며 시장에서 이겨나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다보니 유일한 보유자원인 노동력을 동원하면서 적지 않은 희생을 강요한 것도 사실이다. 경제가 개방되면서 무모한 투자로 국력을 낭비한 책임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예외없이 다 잘못되기만 한 것이었을까. IMF 충격으로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 경제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부정적 측면만 들추고 채찍질하는 소리만 들리는 지금, 40년간 기업체에서 제 딴에는 어지간히 땀흘려 일하면서 갖게 된 자부심이 일조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만다.

 과거의 선택과 결단을 오늘의 시점에서 실천적으로 시뮬레이션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적다. 탁상에 과제를 올려놓고 여러 갈래의 선택지마다 그 결과의 선악 장단을 분석하고 비판 내지 평가하기는 비교적 쉽지만 한정된 정보로 선택과 결단이 강요당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 자기 스스로 처해 보지 않는 한 그 당시 그 상황을 궁극적으로 체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탁상이론이 아닌 행동이나 사실 변화가 일어나는 역사적 선택은 오랜 시일을 경과하면서 두고두고 평가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택에도 몇 가지 분명히 긍정적인 것들이 있었다. 비록 국토와 민족의 분단은 우리의 소망이 아니었으나 동서냉전의 양 체제 중에서 서방에 속하게 됐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로 정치체제에서 민주주의를, 경제체제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택하게 된 것을 후회할 이유는 조금도 없고 여기에 개방과 세계화란 추세를 더해 우리나라 체제의 기본으로 삼는 것에 대해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정권의 실정을 규탄하거나 대기업들의 경영부실을 힐책할 때 그 잘못에 대한 부정의 강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나머지 가끔은 지식인이나 정치인이 이런 기본원칙에서 벗어나서 이를 논하는 듯한 인상이 들 때가 있다.

 6·25 동란의 발단이 남침이냐 북침이냐 하는 것은 단순한 사실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주체선택의 문제다. 또 소위 재벌의 구조조정이 지향하는 것은 개방된 세계시장에서 우리 산업 내지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지 과거 40년간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경제주체 중의 하나를 그저 파괴해 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경쟁력의 제고는 반드시 분배의 개선과 일치되지 않는 법이라 무작정 두 토끼를 좇는다고 해서 좋은 방책이 되지는 못한다. 과거사 중에서도 긍정적인 요소들을 힘써 발견해 새롭게 조명하고 평가해 온존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미래를 위해서는 부정만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글에는 『근대화 유산의 가치는 「폐허의 미학」이 아니다. 근대화에 수반해 지역이 어떻게 「먹고 살아 왔는가」를 말해 주고 그것이 현재에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를 생각케 하는 점에 뜻이 있다』라는 말이 있었다.

<이헌조 LG전자 고문>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