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71)

 70년대 후반 미국과 일본에서는 컴퓨터에 관한 서적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읽어야 할 책이 많았고 그만큼 책 구매에 들어가는 돈을 댈 수는 없었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바로 그 무렵에 다행스럽게 어떤 방법이 생겼다. 토요일 하오에 거의 모든 사람이 퇴근을 하고 이길주 차장이 남아 있었다. 나는 항상 모두 퇴근한 후에도 연구실에 남아 컴퓨터를 사용했는데 책에서 배운 것을 실험하기도 하고 다른 기술자들이 귀찮아 하는 CPU보드 수리를 하는 것이다.

 이길주 차장을 찾아온 손님은 키가 크고 얼굴이 핸섬했다. 그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이따금 어깨를 추썩거리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그는 이길주 차장과 한쪽 소파에 앉아 무엇인가 한동안 의논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차장은 퇴근을 하려는지 옷걸이에 걸어놓은 웃옷을 걸쳤다. 그때 그 남자가 나의 곁으로 와서 책상 위에 있는 미국 컴퓨터 원서를 들춰보았다. 나는 다른 원서를 펴들고 테스트 프로그램의 변화과정을 연구한 논문을 읽고 있었다.

 『프로그램의 역학 구조라. 이거 없던데 당신이 구했소?』

 그는 책상 위에 있는 원서를 펼치면서 나에게 물었다.

 『네,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래요? 다 읽은 후에 빌려주겠소? 우리 도서실에도 없고 외국 원서 서점에 가도 없던데 어떻게 구했지요?』

 『한 권 남은 것을 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문서적을 사전 없이 읽는 것을 보니 대단하군. 인사나 하고 지냅시다. 나 키스트(KIST)에 있는 한성우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우리가 악수를 하고 있을 때 이길주 차장이 다가와서 말했다.

 『참, 인사 나누지. 신입 사원이지만 우리 기술실에서 가장 머리가 잘 돌아가는 친구지.』

 『최영준이라고 합니다.』

 『주로 원서를 읽고 있소?』

 『한글로 번역을 한 것은 별로 없어서요. 그런데 미국 원서는 많더군요. 너무 비싸서 좀 힘듭니다만.』

 나도 모르게 궁색한 소리를 했다.

 『그래요? KIST에 오면 도서실이 있는데 미국과 일본에서 출판된 거의 모든 전문서적을 비치해 놓고 있어요. 언제든지 와서 읽어요. 나는 일요일에도 있으니까 와요. 책을 빌려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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