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창간16주년] 디지털 인프라-표준화

 「전자상거래(EC) 지불수단의 표준을 잡아라」.

 실물거래에서 「돈」이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있듯이 가상 공간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EC관련 기반 기술분야에 대한 표준을 제조업체가 주도하고 있는 반면 유독 지불수단과 직결된 분야는 신용카드사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앞으로 과금이 필요한 EC 응용서비스도 지불수단이 고삐를 쥔 채 표준화의 움직임이 추동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물리적인 수단에서 볼 때 안전한 EC용 지불수단은 크게 마그네틱 신용카드와 IC칩카드로 나뉜다. 신용카드 표준의 경우 현재의 대세는 SET와 SSL 프로토콜이다.

 비자·마스터 등 세계적인 신용카드사가 제안, 현재 1.0버전이 상용화돼 있는 SET는 그동안 사실상 업계 표준으로 인식돼 왔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사이버 쇼핑몰이 웹 기반에서 운영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SSL진영의 반격이 만만찮은 게 사실이다.

 SSL은 넷스케이프 웹브라우저에서 안전한 데이터 통신을 위해 고안된 보안 프로토콜로 최소 40비트에서 최대 1백28비트까지 데이터를 암호화한다.

 미국 정부의 수출규제로 인해 40비트 제품 밖에 쓸 수 없는 국내에서마저 롯데·신세계백화점·교보문고·종로서적 등 대부분의 사이버 쇼핑몰은 SSL을 이용한 결제방식을 취하고 있는 데서 그 성장세를 짐작할 수 있다.

 IC카드는 앞으로 안전한 지불수단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02년부터 비자·마스타 등 세계 카드사는 기존 마그네틱 카드를 IC카드로 대체할 것을 이미 합의한 상태. 이들 카드사들은 IC카드에 신용·직불기능을 담을 수 있는 표준규격인 「EMV」를 지난 96년 합의, 발표했다.

 하지만 업계의 세싸움은 여기서 다시 출발한다. IC카드에 내장되는 메모리·프로세서의 용량과 속도가 향상될 경우, 금융·통신·교통을 비롯한 각종 응용서비스의 프로그램이 결합돼 이들간 표준화 경쟁도 촉발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IC원카드」화가 추진되고 있는 대세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있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특히 지불수단 가운데서도 소액 현금을 담을 수 있는 전자화폐는 세싸움이 치열하다. 교통·통신 등 대부분의 대민 서비스가 소액 현금시장이기 때문이다. 전자화폐는 앞으로 마스타카드가 이끄는 「몬덱스」와 비자·아메리칸익스프레스·프로톤 등이 결성한 프로톤월드인터내셔널(PWI) 그룹 가운데 하나가 장악해 나갈 것이란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몬덱스의 세가 다소 우세했으나 비자가 기존 자사의 「비자캐시」 전자화폐를 사실상 포기선언하면서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비자가 프로톤 전자화폐를 내년경 선보일 공통전자화폐규격(CEPS)에 맞게 새로이 발표하면서 전면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물론 카드사들의 이같은 지불수단 표준화 경쟁에는 쟁쟁한 정보통신(IT)업체들이 가세하고 있다. 하지만 IT업체들은 지불수단 자체보다 IC원카드에 실릴 칩운용체계(COS)나 응용서비스 등의 분야에 관심이 많다.

 모든 개인이 소유하게 될 지불수단의 기본 플랫폼과 프로그램을 장악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재 컨소시엄 등을 구성하고 표준싸움에 나서고 있다. 우선 비자카드는 지난해부터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중심으로 한 자바포럼을 결성, IC카드의 제반 사양에 관계없이 모든 응용프로그램을 수용할 수 있는 자바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개발을 주도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비자카드는 지난 6월 싱가포르에서 자바카드 시범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선수를 치고 나섰다.

 이에 비해 마스타카드는 모토롤러·지멘스·젬플러스·다이닛폰프린팅·슐렘버거 등 주요 IC카드 관련업체들과 공동으로 「마오스코」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마오스코는 다양한 COS를 IC카드에 수용할 수 있는 「멀토스(다중운용체계)」를 개발해왔으며 오는 하반기에는 실제 시범서비스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실시할 계획이다.

 이처럼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전개되는 업계의 표준화 경쟁은 결국 세계적인 EC 환경의 급속한 성장과 맞물려 조만간 판 정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업계가 「강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경우 앞으로 우리가 챙길 수 있는 몫이 어느 정도일지 의심스럽다』는 업계 관계자의 지적은 이같은 표준화 경쟁이 단지 관심거리 정도가 아님을 시사한다.

〈서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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