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를 아십니까.
주조작업이나 연판을 구을 때 모락모락 피어나는 매캐한 납 냄새가 진동하던 80년대 초 신문사 제작국의 풍경을. 수만개의 납 활자가 문선공들의 능숙한 채자솜씨를 거쳐 비로소 생명을 얻어 꿈틀거리던 언어들은, 그 날짜 신문이 나오기 무섭게 곧바로 「언어의 시체」로 분해되어 정판부 작업대 위에 봉분을 만들며 수북이 쌓이곤 했다.
원고를 쓰고, 활자를 뽑고, 제목을 달고, 박스물 만들고, 레이아웃을 그리고, 판을 짜고, 교열을 보고, 지형을 뜨고…. 강판시간이 되면 마치 남대문시장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았던 신문사.
그러나 신문사에도 이른바 CTS(Computerized Typesetting System)라는 새로운 신문제작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작업환경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CTS의 초기단계는 기자들이 쓴 원고를 오퍼레이터가 컴퓨터로 입력하고 완벽한 교열작업을 거친 후 편제부원들이 편집기자의 레이아웃에 따라 칼로 오려붙이는 이른바 「대지발이」라 불리는 전산사식 개념의 작업시스템이었다. 편집 교열도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그때만 해도 악명높은 악필의 기자 원고는 오퍼레이터들에게 기피대상 1호였다. 그러나 곧이은 신문제작의 하드웨어 부문의 변화는 그들의 악필 원고를 컴퓨터 속으로 숨겨 버렸다.
신문제작에 본격적인 변혁의 물결이 출렁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들어서서부터다. 각 신문사마다 경쟁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한 CTS는 마치 운용체계가 도스환경에서 윈도환경으로 바뀐 만큼이나 신문제작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정보사회 뉴스의 홍수 속에서 가장 빠르고 알찬 뉴스서비스로 독자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언론매체들의 경쟁 때문이기도 했다.
영상조판, 즉 일관 제작시스템인 이 CTS는 일선 취재기자가 입력한 기사를 온라인으로 사내의 「기사은행」인 집배신시스템에 저장하고, 동시에 해당 데스크 컴퓨터로 보낸다. 각 출고부서 데스크는 송고된 기사를 취사선택하고 문장을 손질한 후 각 면 담당 편집기자의 컴퓨터로 다시 기사를 전송한다. 편집부에서는 레이아웃을 그리고 기사의 표제를 달고 교열부에서는 모니터를 통해 기사의 잘못된 곳을 수정한 뒤 네트워크를 통해 제작부 대조기로 보낸다. 이러한 과정은 모두 동시적이고 입체적으로 진행되며 이를 통해 편집기자는 뉴스의 모든 구성요소를 컴퓨터를 통해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한 신문제작 환경의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편집기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잰걸음」 「박차」 「가속페달」 「본격화」 「물꼬」 「가속화」 등 지극히 관용적인 낱말들이 어울릴 만큼 작업환경은 변화무쌍하다. 지금의 CTS는 기사형태의 텍스트 파일이건 사진형태의 이미지 파일이건 모든 정보를 구내통신망(LAN)을 통해 직접 모니터로 불러들여 최종 완성된 내용을 필름으로 바로 출력하는, 이른바 풀페이지 시스템이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사진전송기와 디지털카메라 등의 등장으로 해외 통신사나 특별취재반이 보내는 영상자료까지 실시간으로 받아 신속한 편집을 할 수 있게 되어 납 활자 추방에 이어 종이와의 결별을 선언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종이 신문뿐만 아니라 인터넷 전자신문 역시 조회수가 날로 급증하고 있다. 세계 어디서나 네티즌이 컴퓨터 키보드로 http://www.etnews.co.kr를 두드리면 모니터에는 산뜻한 인터넷 전자신문 홈페이지가 떠오른다. 그리고 마우스로 해당 항목을 클릭하기만 하면 정보통신, 컴퓨터, 국제, 영상, 부품, 산업전자, 가전, 유통 등 각 분야의 전문정보가 섹션 형태로 나타나고 생생한 최신동향을 마음껏 열람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뉴미디어시대의 혜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경준 기자>
경제 많이 본 뉴스
-
1
애플페이, 국내 교통카드 연동 '좌초'…수수료 협상이 관건
-
2
'코인 예치' 스테이킹 시장 뜬다…386조 '훌쩍'
-
3
단독CS, 서울지점 결국 '해산'...한국서 발 뺀다
-
4
[이슈플러스] '실손보험 개혁안' 두고 의료계 vs 보험업계 평행선
-
5
빗썸 KB행 신호탄…가상자산 거래소 실명계좌 '지각변동' 예고
-
6
[이슈플러스] 1·2세대 실손도 '위험'…법 개정해 기존 계약까지 뒤집는다
-
7
은행 사활건 기업·소호대출, 디지털뱅킹 전면 부상
-
8
새해 첫 자금조달 물꼬튼 카드업계…“금리인하기, 내실부터”
-
9
'금융사기 뿌리 뽑자' 은행권 보안 솔루션 고도화 움직임
-
10
[ET라씨로] LA산불에 기후변화 관련株 급등… 케이웨더 23%↑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