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만큼 우리와 친근한 금속도 드물다. 원자번호 29, 원소기호 Cu, 흔히 동(銅)이라고도 표현하는 구리는 천연 상태에서도 금속으로 산출이 가능하고 제련법도 간단해 친근하게 사용해 왔다. 따라서 구리의 역사도 인간의 역사만큼 길다. 석기시대에 이어 곧 동기시대가 이어졌고, 주석과 구리의 합금인 청동이 만들어지면서 찬란한 청동기문화 시대가 열렸다. 산업혁명 시대에는 철과 더불어 기계용 재료로 쓰였고, 19세기 말부터는 전기의 발견과 함께 전선을 비롯한 전기재료로 수요가 급증하면서 구리는 핵심금속으로 그 위치를 공고히 했다.
구리가 이처럼 끈질기게 인간문화와 함께 한 것은 가공성과 강도가 뛰어난데다 열 및 전기의 전도율이 은에 이어 두번째로 크기 때문이다. 흔히 중학교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화학실험 대상이 구리 도금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성질을 지닌 구리가 반도체 기술과 접목해 화려한 재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바로 구리 칩의 개발이다.
반도체 분야는 기억저장소인 트랜지스터를 좁은 공간에 얼마나 많이 집적하느냐가 관건이다. 기존에는 트랜지스터 패킹에 알루미늄을 사용했는데 점점 소형화함에 따라 한계에 달하고 있다. 알루미늄으로는 클록 속도 4백㎒ 이상은 무리라는 지적이 높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알루미늄에 비해 저항이 작아 전자신호를 더욱 빨리 전송할 수 있는 구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구리를 사용하면 알루미늄에 비해 40% 가량 성능을 높이는 반면 제조비용은 30%까지 낮출 수 있다. 칩 집적도 향상과 단가인하 경쟁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이 정도의 장점은 가히 혁신적이다. 이에 따라 다수의 업체들이 속속 구리 칩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구리 칩의 원조는 역시 IBM이다. IBM은 지난해 8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구리 칩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 말에는 구리 기술을 이용한 파워PC 칩을 출하할 예정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IBM에 이어 모토롤러, 텍사스인스트루먼츠 등도 구리를 이용해 알루미늄의 물리적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를 잇따라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반도체 3사를 중심으로 구리 칩 개발이 활기를 띠고 있다. 삼성전자가 내년 상반기까지 구리 칩 제조기술을 채택한 공정라인을 기흥에 도입할 예정이며, LG반도체는 중앙연구소에서 올해부터 구리 칩 관련 기반기술과 주변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현대전자 또한 담당팀을 구성해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류에게 찬란한 청동기 문화를 선사했던 구리의 신화가 21세기 반도체 부문에서도 재현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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