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은 진리와 질서, 정의의 표상이오. 파괴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나가는 도구요. 불이 가지는 빛과 열기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것이오. 결국은 선과 악도 그 불을 통해 하나가 되오. 선과 악을 초월할 수 있는 세계, 그것은 불로 만들어지는 세계요.』
이런 곳에서 나눌 이야기가 아니었다.
남자와 여자가 벌거벗은 채 목욕을 하는 증기탕 내부에서 나눌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시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해대던 사내가 잠시 말을 멈추고 텔레비전을 응시했다. 텔레비전 화면에 어젯밤에 보였던 맨홀 화재상황이 다시 나타났을 때였다. 맨홀에서 하늘 높이 솟구치는 불길과 함께 화재원인과 문제점에 대한 아나운서의 멘트가 이어졌다.
화재원인.
아나운서의 화재원인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광화문 네거리 맨홀 화재현장의 그림이 화면으로 나타났다. 도로가 표시되고 그 도로 밑으로 맨홀을 통해 드나들 수 있는 통신구가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해당 회사에서 나온 직원인 듯한 사람이 일일이 그 그림을 보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수직 통신구가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 통신구내에 괸 물을 밖으로 퍼내는 수중 모터와 그 수중 모터를 동작시키는 분전반을 그린 그림이 확대되어 화면에 나타났다.
상황을 설명하던 해당 회사직원이 분전반이 그려진 곳을 가리키며 자세한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게 된 상황과 함께 현장검증을 거친 공식적인 화재원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사내의 눈빛이 텔레비전의 화면에 정지해 있었다.
이곳에 온 것과 지금까지 하던 이야기를 다 잊어버린 듯 그렇게 정지해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텔레비전의 화면이 다음 소식으로 변하자 이내 벗어나 여인의 머리와 얼굴, 거의 다 드러나 있는 젖가슴으로 옮겨졌다. 꼰 다리 사이의 사타구니와 쭉 빠진 종아리를 더듬으며, 이미 준비해놓았다는 듯이 말을 잇기 시작했다.
『조로아스터는 불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체를 파라바하라고 했소. 파라바하. 인간과 불, 인간과 태양을 이어주는 통신매체가 파라바하라는 것이오. 그래서 조로아스터는 모든 제의를 불 앞에서 행하였소. 불은 마지막으로 전해졌지만 이미 창조된 것들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주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오. 불 없이는 나머지 창조물이 존재할 수도 번성할 수도 없다고 믿었던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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