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술 패권 전쟁의 승패를 가를 거대한 축이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반도체 산업의 무게추가 미세공정으로 대표되는 '전공정'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기술 완성도를 결정짓는 '첨단 패키징'으로 중심축이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지난 9일 인천시 송도에서 개막한 '국제반도체 기판 및 첨단 패키징 산업전(KPCA쇼)'에 이어 1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2026 반도체 패키징 발전 정책 포럼'이 잇따라 열린 것만 봐도 패키징 산업 육성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임을 말해 준다.
반도체 초격차 확보의 종결판은 결국 첨단 패키징이다. 과거 패키징은 칩을 단순히 조립하고 보호하는 '후공정'이나 '테스팅' 영역에 머물며 보조적 역할로 규정되곤 했다. 그러나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거대언어모델(LLM)과 AI 연산 처리량이 폭증함에 따라 칩의 물리적 미세화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했다. AI 반도체 핵심인 연산 속도 향상, 초고속 대역폭 확보, 저전력 구현, 그리고 열 제어 및 냉각 효율 개선에 이르기까지 반도체의 실질적 시스템 성능과 생존 조건이 이제 패키징 단계에서 판가름 나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맞닥뜨린 현실은 냉혹하다. 우리나라가 수십 년간 메모리 중심 전통적 패키징에 머물러 있던 사이, 해외 주요국은 저만치 앞서갔다. 세계 후공정(OSAT) 시장에서 대만 주요 기업들이 4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차지하는 동안 한국의 몫은 4%대에 머물렀다.
경쟁국은 국가 차원의 과감한 보조금 지급과 세제 혜택을 바탕으로 생태계를 견고하게 구축했다. 글로벌 시장 표준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첨단 패키징 주도권을 이대로 놓친다면, 우리 반도체 산업은 영원히 추격자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기술 개발 방향, 인력 양성, 공적 자금 투입을 아우르는 입체적이고 신속한 국가 차원의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 흩어진 연구개발(R&D) 과제를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표준화하는 노력과 함께 개발된 기술이 상용화로 이어지도록 실증 팹 인프라 구축과 핵심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과감한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아울러 단기 인력 배출을 넘어, 시장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차세대 기술을 이끌 리더급 석·박사 인력 공급을 지속해야 한다. 첨단 패키징에 대한 과감하고 입체적인 총력 대응만이 우리가 어렵게 일궈낸 반도체 황금기를 더욱 빛나고 오랫동안 우리의 것으로 만들 가장 확실한 투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ditorial@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