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막에는 큰 이상이 없지만 심혈관질환 위험은 높게 나왔습니다. 4개월 뒤 다시 검사해보시죠.”
4일 서울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당뇨병센터. 50대 초반 남성 A씨가 안저카메라 앞에 앉자 1분 만에 촬영이 끝났다. 인공지능(AI)은 곧바로 망막 영상을 분석했다. 가벼운 망막질환 의심 소견과 함께 관상동맥석회화지수 '고위험군'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평소 고지혈증약을 복용해온 A씨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세브란스병원 당뇨병센터는 망막 상태를 확인하는 안저촬영 검사에 메디웨일의 AI 솔루션을 결합해 심혈관질환 위험을 평가한다. 눈 속 망막혈관에 나타난 미세한 변화를 분석해 관상동맥석회화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이다.
이날 검사를 받은 50대 후반 여성 B씨는 녹내장과 망막질환 의심 소견을 받았다. 관상동맥석회화지수는 '중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의료진은 갑상선질환과 당뇨 전단계 등을 조기에 확인하기 위해 추가 혈액검사를 권했다.
진료를 맡은 김혜경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망막촬영 기반 질병 예측 AI는 심혈관 컴퓨터단층촬영(CT)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의 정확도를 보인다”며 “하루 평균 200~300건, 많게는 500건의 AI 기반 안저촬영을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검사 준비가 간단하고 촬영 시간도 1~3분에 불과하다”며 “검사 직후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 CT 검사보다 환자 수용도가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처럼 의료기관에서 활용 가능성을 입증한 첨단 의료 AI를 실제 진료 현장에 확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이날 세브란스병원에서 'AI 응용제품 신속 상용화 지원사업(AX-스프린트)' 착수보고회와 협약식을 열었다. 의료 AI 제품의 임상 적용과 조기 상용화를 본격 지원한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우수한 AI 의료기기가 개발돼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도 실제 의료기관 도입과 건강보험 수가 적용까지 넘어야 할 장벽이 많았다. 기술 개발과 허가를 마치고도 환자가 진료 현장에서 혜택을 체감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정부는 이런 간극을 줄이기 위해 6개 분야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의료기관에서 제품을 실증하고 실제임상근거(RWE)를 확보해 시장 진입과 건강보험 등재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세브란스병원에 심혈관질환 위험을 예측하는 '닥터눈 포 CVD'와 안질환 진단을 지원하는 '닥터눈 포 펀더스'를 공급한 메디웨일은 5개 기관과 임상 확산에 나선다.
제이엘케이는 뇌관류·뇌경색 분석 AI를 22개 기관에 적용한다. 루닛은 흉부 엑스레이와 유방암 진단 보조 AI를 11개 기관에서 실증한다. 시너지에이아이는 생체신호 분석 AI를 15개 기관에 공급한다. 프리베노틱스는 위내시경 실시간 분석 AI를 8개 기관에서 검증하고, 휴런은 자기공명영상(MRI) 기반 파킨슨병 진단 보조 AI를 3개 기관에 적용한다.
최태근 메디웨일 대표는 “이번 실증 사업을 토대로 대규모 RWE를 확보하겠다”며 “건강보험 수가 등재를 달성해 국민 누구나 기술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고, 미국 시장 진출 기반도 마련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성창현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이번 사업은 AI 디지털 의료기기가 실제 진료실에서 국민 건강에 기여하도록 돕는 핵심 마중물이 될 것”이라며 “사업을 통해 축적한 자료와 시장 진입 경험이 의료 AI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