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가 답을 내놓는 시대에 인간의 진짜 과제는 '더 나은 답'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은 인공지능(AI) 시대 학교가 가장 우선해야 할 과제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꼽았다. AI가 어떤 질문에도 유창하게 답하면서 학습자가 답을 읽는 것만으로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유창성 착각'에 빠질 수 있다과 진단했다.
정 원장은 “편리함은 종종 우리가 틀리고, 고민하고, 다시 시도하며 성장하는 인지적 과정을 조용히 건너뛰게 만든다”며 “과제는 완성됐지만 이해는 일어나지 않은 '가짜 학습'을 막아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특히 AI를 '우리가 외면해온 교육의 본질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표현했다. AI가 검색과 요약, 글쓰기를 순식간에 대신하면서 그동안 교육이 정답 재현과 암기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같은 AI라도 사고를 대신해주는 '지름길'로 쓰면 목발이 되고, 사고를 촉발하는 '동반자'로 설계하면 날개가 된다”며 “성패를 가르는 것은 기술의 최신성이 아니라 교육적 설계의 정교함”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AI 활용 원칙도 제안했다. 학습자가 먼저 스스로 문제와 씨름하며 인지를 활성화하고(Before AI), AI를 활용해 사고를 확장한 뒤(With AI), 마지막으로 그 과정을 성찰하며 내면화하는(After AI) 순서가 필요하다는 견해다.
정 원장은 이를 국가 교육정책에도 반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가장 시급한 정책 과제로 'AI 활용의 순서(시퀀싱) 원칙'을 꼽았다. 언제 AI를 개입시키고 언제 학습자가 스스로 씨름하게 할지 기준이 없으면 기술 도입이 오히려 학습을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평가와 입시 체제의 전환도 주문했다. 탐구 주제를 설정한 흔적과 사유를 수정한 과정, 메타인지적 성찰을 학습 포트폴리오와 수행평가로 살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 원장은 “평가가 바뀌지 않으면 수업도 바뀌지 않는다”며 “결과물 중심에서 과정 중심 평가로, 구술시험·실기·복합 시뮬레이션과 같은 '역량 증명 평가'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밝혔다.
교사의 역할도 지식 전달자에서 학습 설계자와 '심층 촉진자'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가 기초 개념의 반복 연습과 오개념 진단을 담당하면 교사는 학생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고 사고를 확장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정 원장은 2035년 교실에 대해 “AI로 대표되는 최첨단 기술이 활용되지만 인간 교사의 섬세한 정서적 '휴먼 터치'가 더욱 강조될 것”이라며 “기술은 자동으로 혁명이 되지 않고, 그 방향은 결국 우리가 AI를 어떻게 쓰기로 선택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