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디지털 사피엔스]대항해 시대 vs AI 대연산 시대

유럽 최대의 해상무역권은 지중해였다. 포르투갈의 신진 상인과 정치 세력은 지중해는커녕 북해나 발트해도 진출하지 못했고, 서쪽 대서양과 아프리카 정도만 항해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전신 아라곤 왕국이 마침내 아테네와 시칠리아, 나폴리의 왕위를 장악하며 지중해 중심 세력에 합류했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냈다.

그러나 아시아 무역로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해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 제국 앞에서 차단됐다. 이베리아인들은 이슬람 세력에서 전수받은 정교한 측정 도구인 나침반과 아스토롤라베라로 서쪽 바다를 항해하며 대서양과 아프리카, 인도, 아메리카로 진군했다. 바로 '대항해 시대'(Age of Discovery)의 개막이다.

포르투칼과 에스파냐가 신대륙에서 금은보화를 실어 나르며 세계 경제를 주무르고 있던 1805년, 후발주자 영국은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함대를 무찌르고 대영제국을 건설한다. 양모 산업밖에 없던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증기기관과 방직기계를 만들고, 범선과 대포로 5개 대륙에 식민지를 개척했다. 온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는 바다를 지배하며 전 세계에 면직물을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인도에서 면화를 가져와 맨체스터에서 옷을 만들고 다시 인도에 비싼 값에 되파는 완벽한 수익 구조를 완성했다. '거대 공장'과 하나로 연결된 '거대 시장' 기반 '대량생산 시대'(Age of Mass Production)의 개막이다.

전후 냉전은 정보체계 고도화를 요구했다. 핵 공격에도 파괴되지 않을 통신망이 필요했다. 군사 목적으로 구축된 분산 통신 '아르파넷'은 후일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라는 뜻의 '인터넷'이 되었다. 웹(Web)의 창시자 팀 버너스-리는 하이퍼텍스트(HTML)와 통합주소체계(URL) 기술로 흩어져있던 온 세상 디지털 자원을 대통합했다.

인터넷 대중화의 상징인 '웹 서핑'(Web Surfing)이라는 말처럼, 웹은 '디지털 바다'를 누비는 '새로운 대항해'에 다름 아니다. '빅테크' 플랫포머들은 나침반과 아스토롤라베에 해당하는 검색엔진을 필두로 디지털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대연결 시대'(Age of Hyperlink)의 개막이다.

'대연결 시대'까지만 해도 인터넷 서버들은 각자의 흩어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네티즌은 브라우저 돛배로 자유로이 항해할 만했고, 플랫폼에 진입할 때는 세금을 조금씩 내면 됐다.

그러나 이제 인공지능(AI)은 모든 문법을 바꾸고 있다. 중개자에 불과해 보였던 빅테크들은 흩어진 디지털 자원들을 면화처럼 긁어모아 예쁜 '완제품 옷'을 비싼 값에 되팔기 시작했다. '대연산 시대'(Age of Compute)의 개막이다.

모든 디지털 자원은 그것이 '빅'이든 '스몰'이든, 위키피디아처럼 유서 깊은 도서관이든, 뉴욕타임즈 출간물이든, '거대 AI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연산처리(Compute)될 운명이다. 희귀한 데이터를 갖고 있어서 안심이라고? 그럴 리가. 그저 조금 비싼 값에 팔릴 뿐이다. 대연결로 창출된 부가가치는 '거대 시장' '거대 공장' 그리고 '거대 상인과 정치인'의 무대일 뿐.

'대항해 시대'의 바다와 '대연결 시대'의 인터넷, 그리고 '대생산 시대의 거대 공장'에 이은 '대연산 시대의 거대 AI 팩토리'가 출항을 준비 중이다. 물리 세상이 바다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 후 그 통합의 탐스러운 과실들이 무르익을 즈음에 열강들의 주도권 쟁탈전이 결국 '인류사적 대충돌'로 마무리되었음을 잊지 마라.

대충돌과 냉전의 지혜를 학습한 인류에게, 다가오는 '디지털 세상의 대충돌'이 '물리 세상의 대충돌'처럼 잔혹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구한말 아무런 준비조차 없었던 우리의 처량했음에 비하면, 디지털 '대연산 시대'의 필수품인 반도체와 로봇, 그리고 'K-Everything'으로 불리는 대중적 문화까지 애써 일구어온 씨앗들이 훗날의 우리에게 큰 행운이었기를 기원한다.

Photo Image
김주한 서울대 연구부총장·정보의학·정신과전문의

김주한 서울대 연구부총장·정보의학·정신과전문의 juhan@snu.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