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신의 핀테크스토리]AI 에이전트 시대, 거래의 신뢰는 어떻게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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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AI디지털경제금융포럼 의장

AI 에이전트 시대, 온라인 쇼핑의 화두는 결제 수단이 아니라 결제 주체다. 지금까지 AI는 소비자의 상품 선택을 돕는 추천과 비교에 머물렀지만, 이젠 AI가 상품을 검색하고 가격과 조건을 비교한 뒤 예약·주문·결제까지 수행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다음 주 부산 출장에 맞춰 20만 원 이하 호텔을 예약해 줘'라고 말하면 AI가 여러 사이트를 검색해 조건에 맞는 상품을 고르고 결제까지 마치는 식이다. 소비자가 직접 시장을 돌아다니던 시대에서 AI가 대신 선택하고 거래하는 시대로 바뀌는 것이다.

이미 이런 변화는 금융·결제 인프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픈AI는 2025년 스트라이프와 AI와 판매자가 주문을 처리하는 '에이전틱 커머스 프로토콜'을 공개했고, 비자는 올해 오픈AI와 협력해 AI 에이전트가 비자 결제망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마스터카드도 에이전트 페이를 통해 AI가 사용자 대신 거래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세계 최대 실시간 지급결제망인 UPI에서 AI에이전트가 일정 범위의 소액결제를 매번 사용자의 승인을 받지 않고 수행하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8월 UPI 거래건수는 월 245억건을 넘어섰다.

문제는 AI가 거래를 대신할수록 편리함은 커지지만, 기존과 다른 신뢰 문제가 생긴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전자상거래의 핵심은 결제자가 실제 본인인지, 본인이 거래를 승인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AI가 거래 주체로 들어오면 확인해야 할 대상이 달라진다. 어떤 AI가 누구를 대신하는지, 실제 권한을 부여받았는지, 그리고 어느 금액·상품·거래 조건까지 허용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던 인증 체계가 이제 AI의 신원과 권한을 함께 검증하는 체계로 확장돼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용자가 AI에게 '매달 생필품은 10만 원 이내에서 알아서 주문해'라고 지시했는데 AI가 80만원짜리 가전제품을 구매했다면 이를 정상적인 위임 거래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용자가 AI에게 구매를 맡겼다고 해서 모든 상품과 금액에 무제한 권한을 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AI 거래에서 중요한 것은 결제 수단 자체를 AI에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금액과 상품군, 사용기간, 거래 조건 등을 미리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거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글로벌 결제회사들이 권한 기반 결제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자의 '신뢰할 수 있는 에이전트 프로토콜(Trusted Agent Protocol)'과 마스터카드의 Agent Pay for Machines 등은 AI가 사용자를 대신해 거래할 때 에이전트의 신원과 사용자가 부여한 권한을 확인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거래가 이뤄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오픈AI 역시 결제 정보를 AI에게 그대로 맡기기보다 토큰화된 결제 정보와 실시간 승인, 이상 거래 모니터링을 결합해 사용자가 정한 조건 안에서만 거래하도록 하고 있다. AI에게 카드를 통째로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범위의 디지털 위임장을 주는 셈이다.

거래 신뢰를 위해서는 거래 과정도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AI는 하나의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여러 사이트를 검색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호출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만큼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순히 AI가 결제했다는 기록만으로는 책임을 가리기 어렵다. 따라서 사용자가 어떤 조건을 제시했고, AI가 어떤 권한을 받았으며, 어떤 기준으로 상품을 선택했고, 결제가 어떻게 승인됐는지를 모두 기록해야 한다. 기존 금융거래에서 결제기록이 중요한 증빙이었다면, AI 시대에는 결제기록뿐 아니라 위임과 의사결정의 기록도 중요한 거래 증빙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록이 남아야 책임 소재도 명확히 할 수 있다. AI의 판단 오류인지, 이용자의 지시가 불명확했는지, 판매자나 결제회사가 권한 범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는지를 구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AI가 거래의 새로운 중간자로 등장한 만큼 AI 사업자와 결제회사, 플랫폼, 가맹점 간 책임 기준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AI가 거래하는 방식이 사람과 다른 만큼 부정거래 탐지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기존 FDS는 접속 지역이나 기기, 결제금액, 거래 빈도 등 사람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지를 중심으로 이상 거래를 탐지한다. 하지만 AI는 짧은 시간에 여러 사이트를 이동하고 많은 거래를 실행하는 것이 정상적인 행동일 수 있다. 반대로 범죄자가 정상적인 AI로 위장하거나 탈취한 권한을 이용해 자동거래를 실행하는 새로운 사기도 가능하다. 앞으로 FDS는 단순한 거래 패턴을 넘어 해당 AI의 신원과 위임받은 권한, 거래 목적까지 함께 판단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종합하면 신원 확인과 권한 통제, 거래 추적, 책임 기준, 부정거래 탐지를 하나의 신뢰 인프라로 연결해야 한다. 글로벌 결제업계는 이미 이를 위한 공통 규칙을 선점하는 경쟁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도 본인인증을 넘어 어떤 AI가 누구를 대신해 어디까지 거래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위임 인증 체계를 준비해야 한다. AI 에이전트 경제의 성패는 결국 더 똑똑한 AI를 만드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래의 신뢰를 누가 먼저 표준화하고 인프라로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AI디지털경제금융포럼 의장 정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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