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 협력 대상에 포함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 기여
세계적 화학소재 회사인 듀폰이 한국에 파격 투자를 단행한다.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용 포토레지스트(PR)를 한국서 연구개발 및 생산하는데 그치지 않고, PR 원재료도 한국산을 쓰기로 했다. 반도체 패권 경쟁으로 전 세계적으로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결정으로, 국내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가 예상된다. EUV PR은 2019년 일본이 한국 수출을 제한한 소재다.
진경식 듀폰 한국기술센터장은 19일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과 전자신문이 개최한 '2024 글로벌 소재·부품·장비 테크페어'에서 “EUV PR 등 핵심 소재를 한국 고객에 보다 빠르게 공급하기 위해 현지 역량을 강화하기로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듀폰 현지화 전략에서 가장 두드러진 건 '원료 수급'이다. EUV PR을 제조하려면 수지·용매·감광성 물질 등이 필요한 데, 듀폰은 이를 100% 국내에서 조달키로 했다. 특히 듀폰은 외국계 기업 뿐 아니라 국내 기업도 협력 대상에 포함시켰다. 현재 천안에서 EUV 양산을 준비 중인 듀폰은 사업 준비 초기서부터 협력사를 발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와 같은 반도체 제조사와의 협력 및 첨단 소재 공급을 위해 한국 내 연구개발(R&D) 센터를 두거나 생산 설비를 갖춘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러나 원재료부터 제품 생산까지 100% 한국에서 진행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EUV PR은 첨단 소재이기 때문에 일본의 경우 해외 생산 기지 이전도 조심스러워하는데, 듀폰은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셈이다.
이같은 듀폰의 행보는 흔들림 없는 EUV PR 공급망을 한국 내 구축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배터리 리튬이나 요소수 같이 특정 소재나 원재료 하나로 제조가 차질 빚는 상황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것으로, 국내 반도체 제조사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가 예상된다.
듀폰은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사태 때부터 한국 진출에 공을 들였다. R&D와 소재 생산 거점을 한국에 두기로 하고, 2020년 2800만달러(약 325억원) 투자를 결정했다.
진 센터장은 “R&D 경우 한국 현지화를 통해 샘플 납품 주기를 단축했다”며 “미국에서 진행한 것과 견줘 5분의 1 수준으로 앞당길 수 있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새롭게 성능 평가한 샘플 수도 크게 늘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에는 향후 5년간 2000억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한국 R&D와 EUV PR 생산 인프라 확충을 위해서다. 여기에 더해 웨이퍼 평탄화에 필수인 화학적기계연마(CMP) 슬러리·패드도 국내 고객에 맞게 개발 및 양산 능력을 확대한다. 듀폰은 CMP 소재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다.
최근 미·중 무역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공급망 위기가 여전한 만큼 듀폰의 현지화 전략 성과에 대해 이목이 집중된다.
진 센터장은 “앞으로도 한국 R&D와 제조 역량을 강화하는데 지속 투자할 것”이라며 “향후 5년간 100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 창출도 기대한다”고 밝혔다.
권동준 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