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력 美에 뺏길라…韓전용 전문직 취업비자 확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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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미국 전문직 취업비자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도체 학계에서 인력 유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으로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취업비자가 확대되면 국내 우수 인력이 대거 유출될 것이란 문제 제기다.

10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외교부는 미국 연방의회에 발의된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를 만드는 법안 ‘한국과 파트너 법안(Partner with Korea Act)’ 통과를 지원하고 있다. 이 법안은 전문 기술과 경력을 보유한 한국 국적자를 대상으로 연간 최대 1만5000개 전문직 취업비자(E-4)를 발급하는 것이 골자다. 한국 석·박사급 인재와 유학생 등이 미국 내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지난해 하원에서 통과됐으나 상원 통과는 실패, 최근 재발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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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외교부 관계자는 “호주, 싱가포르 등 해외 주요 국가는 미국 내 취업비자 쿼터제를 보유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 내 한국 유학생의 현지 취업 수요 등을 고려할 때 비자 확보가 필요하다고 판단, 해당 법률이 통과될 수 있도록 미 의회를 설득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구글·애플 등 미국 현지 빅테크 기업뿐만 아니라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같이 미국 공장 또는 합작사를 신규 건설하는 국내 기업 인력 수요 충족을 위해 비자 확대가 필요하다는 게 외교부 입장이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양국 협력과 원천기술 확보 차원에서 인적 교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학계는 미국 내 국내 기업 수요를 고려한다 해도 비자 확대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내 반도체 제조가 본격화되면 수요 인력의 절반만 자국에서 충원 가능할 전망이고, 이에 해외 반도체 인력 흡수의 블랙홀로 떠오를 텐데, 대비 없이 확대만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은 부족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기업에 숙련된 인력 확보와 장기적 인력 전략, 교육기관과 협력 등 인력 양성방안 제시를 요구했다. 국내 반도체 학계가 핵심 인력 유출을 우려하는 이유다.

가뜩이나 국내는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정덕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석좌교수 분석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국내 반도체 인력은 12만7000명이 추가로 필요하다. 현재 교육과정상 5만명 양성만 가능해 인력 태부족이 예고됐다. 교육부 통계에서도 반도체 전공 석·박사 졸업생은 2017년 136명에서 2020년 100명으로 감소하고 있다.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국내외 반도체 기업 간 연구개발(R&D) 격차도 크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인텔은 4만5000명인 반면에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1만명에 그친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분야는 TSMC 6만명, 삼성전자 2만명 등으로 국내 인력 수가 현저히 적다.

취재 중 만난 서울대, KAIST, 성균관대 등 주요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 교수들은 전자신문에 외교부의 미국 취업비자 정원 확대 시 반도체 인력 유출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공통적으로 제기했다. 정부에 인력 유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과 국내 반도체 기업 취직 시 인센티브 제도 마련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규복 반도체공학회장은 “미국 반도체·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우수 인력 채용을 늘리는 데 유학생이나 우리 학생에 국내 기업 취직을 강권할 수는 없다”면서도 “정부가 반도체 우수 인력의 국내 기업 취직 시 혜택 제공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회와 대학 차원에서 국내 기업과 협업해 취업과 연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종진 기자 trut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