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고 7개월치 쌓여…재고 소진에만 상반기 넘길 듯
삼성DS, 분기별 5000억 영업손실 전망
SK하이닉스, 지난 4분기 1조 적자 유력
DDR5 D램 구원투수 기대…인텔 서버용 CPU 교체 수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올해 하반기 개선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재고 조정과 감산, 인텔 신형 CPU 출시 효과 등을 고려해서다. 그러나 최근 현장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재고가 기하급수로 쌓이는 현 상황에서는 연내 개선도 힘들다는 것이다. 올해는 이미 끝났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메모리 재고, 얼마나 심각하길래
업계를 종합하면 국내 메모리 업체들의 재고 일수는 20주(약 5개월)다. 이는 적정 재고 수준 5~6주보다 4배 많은 것이다. 적정 수준을 이미 몇 배 뛰어넘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수요 감소가 본격화된 지난해 하반기보다도 높아진 재고 수준이다. 지난해 하반기 증권업계에서 추정한 D램 재고 10주, 낸드 플래시 14주다. 이보다 더 재고 일수가 높아졌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감소해 창고에 메모리가 쌓이고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0주는 반도체 제조사에 국한된 기준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실제 고객사가 보유한 메모리 재고까지 포함하면 일수는 훨씬 더 길어진다”고 말했다.
스마트폰·PC·서버 제조사들은 자사 제품의 원활한 생산을 위해 메모리를 미리 구매해둔다. 워낙 물량이 많은 데다 메모리가 시황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에 가격이 떨어졌을 때나 집중적인 생산이 필요할 때 미리 구매하는 사례가 많다.
이들 회사가, 즉 메모리 고객사들이 선구매해서 보유한 재고까지 포함하면 재고가 20주를 넘어 30주 안팎까지 쌓여 있다는 분석이다.
30주는 약 7개월의 시간이다. 단순 계산해도 현재의 재고가 시장에 원활히 소화되려면 7개월 이상이 소요된다는 얘기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단순하게 지금부터 시장이 나아진다 해도 재고를 소진하는 데만 상반기를 넘기기 때문에 하반기도 어렵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면서 “시장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재고 수준은 높아져 하반기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게 지금 분위기”라고 전했다.
◇1위 삼성도 못 피한다…1분기 메모리 적자 우려
메모리 시장 악화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악영향을 준다. 회사 전체의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 사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33분기 만에 최소 영업이익을 남겼다.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사업이 글로벌 경기침체 직격탄을 맞아서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4분기 잠정실적은 매출 70조원, 영업이익 4조3000억원이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8.58%, 영업이익은 무려 69%가 줄어든 수치다.
SK하이닉스는 2월 1일 4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증권가에서는 4분기 적자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 1조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전망한다.
시황 악화에 삼성전자도 적자를 피하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도 4분기 낸드 사업에서 적자 전환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D램도 악화하면서 삼성전자가 1분기에 메모리 사업 전체에서 적자 전환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핵심인 메모리가 안 좋으면 반도체 사업이 영향을 받고, 삼성의 전체 실적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IBK투자증권은 삼성전자 DS 부문이 연말까지 분기별 5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SK하이닉스도 최대 4000억원대 분기 적자를 연말까지 이어갈 것으로 추정했다.
김운호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전방 산업 부진에 따른 고객사들의 재고 조정 의지가 아직 강해 올해 수요 회복 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고 봤다.
경기침체 때 고객사는 자체 재고를 우선 소진한다. 새로운 제품을 구매할 이유가 없어서다. 공급사 입장에서는 주문이 줄어 메모리 판매가 제한되는 것이다.
◇메모리 한파, 더 오래가나
지금까지는 이르면 3분기부터 메모리 시장이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늘어나는 재고에 따라 이러한 기대는 옅어지게 됐다.
재고 악화로 감산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4분기부터 감산에 돌입했다. 생산량을 줄여 재고 증가를 막으려는 시도다.
반면에 삼성전자는 여전히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생산 품목 조정이나 장비 점검 등으로 투입량 대신 출하량을 늦추거나 줄이는 '기술적 감산'은 일부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달 말 실적 발표 때 감산을 결정할 것이란 예상도 내놓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감산 발표를 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생산량을 줄이려는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면서 “지속적인 영업손실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메모리 반도체 소비 시장은 크게 스마트폰, 서버, PC로 분류된다. 스마트폰은 서버나 PC와 달리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인한 구매 수혜를 크게 받지 못했다. 오히려 구매 심리가 위축돼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말 아이폰 생산 차질도 스마트폰 출하량 성장 둔화에 영향을 줬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는 올해도 스마트폰 출하량이 12억대 중반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전년 대비 2% 상승, SA는 5% 출하량 감소를 전망했다. 사실상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 정체를 예고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2년으로 통용됐던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3년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메모리 핵심 수요처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마트폰 등 모바일향 D램 매출 비중은 2021년 3분기 이후 서버에 밀렸다.
PC는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대량 구매가 이뤄졌다. 반도체 호황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었다. 그러나 시장 포화 수준까지 다다르면서 D램과 낸드 플래시 수요를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PC가 스마트폰보다 교체주기가 긴 것을 고려하면 시장 반등은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성장이 기대됐던 서버도 신통치 않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설비 투자에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구글·메타·아마존·MS·알리바바·텐센트 등 주요 빅테크 기업 설비 투자는 전년 대비 7.3%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작년 12.1%과 견줘 성장 둔화가 뚜렷하다.
단기간 내 재고를 소진하려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 메모리 공급사 재고 처리 압박으로 향후 메모리 가격 하락이 불가피하다. 트렌드포스는 1분기 메모리 가격이 전 분기 대비 20% 안팎으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나마 영업 적자를 상쇄시킬 건 'DDR5 D램' 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하반기 메모리 시장 반등의 주요 근거다. 인텔이 DDR5 D램을 지원하는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를 출시하면서 메모리 교체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DR5 D램 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미 본격적인 DDR5 D램 공급을 위한 공정 전환 채비를 마쳤다. 2분기 DDR5 D램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관련 설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생산 능력을 키워 경쟁 우위를 확보하려는 포석이다. DDR5 D램은 DDR4 대비 수익성이 좋아 영업이익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다. 30% 안팎 높은 마진율을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옴디아에 따르면 올 연말께는 전체 D램 시장 가운데 서버와 PC용 DDR5 D램 점유율이 20%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