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가동은 강원도 레고랜드 관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불이행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 사태를 조기 진화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이번 사태는 전체 금융시장의 일부에서 발생한 경색으로, 자금이 부족한 부분에 대한 지원에 집중하고 전체적인 거시 정책의 기조는 유지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하고 이같은 방안을 논의했다. 추 부총리는 회의를 마친 후 “지자체 보증 ABCP에 대해서는 모든 지자체가 지급보증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예정임을 다시 한번 확약드린다”고 강조했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이날 “현재 전국 지자체 13곳이 총 26개 사업에 1조701억원을 보증하고 있으며 해당 채무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발표했다. 추 부총리와 행안부의 발표는 강원도의 보증 이행 거부로 발생한 신용 경색 국면을 타파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기존 원칙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김 위원장은 “채권시장에서 여러 요인이 있지만 금리가 갑작스럽게 오른 게 주된 요인으로 알고 있다”며 “시장과 좀 더 긴밀히 대화하고 민간의 어려움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앞서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비율 정상화 조치를 유예한 바 있다.
그는 “자체 모니터링을 계속 해왔지만 최근 강원도 사태 등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돌발 변수에 신속 대응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하겠다”며 “LCR 유예도 필요하면 더 하고 예대율 규제도 시장과 대화하며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성 축소 기조를 이어가던 한국은행도 이번 자금 경색 상황과 관련한 지원을 뒷받침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특수목적법인(SPV) 등 다른 방안은 이번 대책에서 빠졌는데 이번 방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국제금융시장 변동성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필요하면 금통위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거시적인 전제 조건이 바뀐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경제 전반의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히 높기 때문에 축소 기조의 통화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 이후 기준금리를 높이며 유동성을 회수하고 있다.
또한 이번 조치에 포함된 적격담보증권 확대와 달리 유동성 확대 효과가 있는 금융안정특별대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금융안정특별대출은 일반기업이나 금융회사로부터 한은이 우량 회사채를 담보로 받고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유동성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장치다.
이 총재는 “시장안정 방안은 ABCP 시장 중심으로 신용 경계감이 높아진 것에 대한 미시 조치로, 은행 중심 자금 순환에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CP 중심 문제라 타깃이 '마이크로'하다”며 “거시적 측면에서의 통화정책 방향과 배치되지 않고 전제조건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최다현기자 da2109@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