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우주·항공 소재 분야 '회색코뿔소'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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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공하면 우리나라는 1톤급 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 일곱 번째 국가로 등극한다. 누리호 성공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을 비롯해 300여 국내 기업이 참여해 우주개발의 핵심인 발사체 설계에서 제작, 운전까지 필수 요소 기술을 자립화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7월에는 10여년 동안 개발해 온 KF-21 비행시험을 시작한다. 2026년 양산을 위한 마지막 단계다. 윤석열 정부는 우주·항공 분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우주항공청을 조만간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2022년은 훗날 우리나라 우주·항공산업 역사에 이정표가 되는 해로 기억될 것이다.

실감은 나지 않지만 물리학자들은 우주에 존재하는 암흑에너지(dark energy)가 지금도 매우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올해 말 가동 예정인 베라 루빈 천문대(Vera C Rubin Observatory)가 이 암흑에너지의 존재와 팽창 확인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주의 기원을 찾는 연구와 도전은 이제 일상이 됐다. 일론 머스크가 2003년에 인류는 단일 행성 종(種)을 벗어나기 위해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이는 돈 많은 IT 기업가의 허풍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아마존, 버진그룹 등 거대 자산기업이 속속 우주개발에 참여해 우주여행을 비롯한 새로운 사업모델을 제시하고 성공을 거두면서 '뉴 스페이스'(new space)는 정부 주도의 우주개발을 '올드 스페이스'로 밀어내고 새로운 우주항공 비즈니스 산업으로 안착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변화다.

한때 과다한 예산 투입이라고 판단해 소극적이던 여러 국가와 정부는 다시 우주개발 투자를 늘리고 있다. 중국은 우주정거장 톈궁(Tiangong) 건설을 위한 여러 발사에 성공했고, 유럽은 아리안6(Ariane 6)를 올해 말 발사할 예정이다. 전 세계 민간과 정부의 치열한 우주개발 경쟁은 마치 15세기 대항해 시대에 미지의 땅을 찾아 떠난 탐험가처럼 우주를 새로운 꿈을 펼칠 신세계로 재인식하게끔 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우주 접근과 이용이 역사적 변화의 정점에 서 있다고 판단한다. 실제로 현재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는 우크라이나의 열위 전력 보충에 크나큰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 또한 이러한 위성을 파괴할 공격용 로켓 사용을 언급하고 있다. 일상의 다양한 위치기반서비스도 GPS라는 우주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올해 여름도 전례 없는 더위가 찾아올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 속에 지구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위성 활용의 중요성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각종 재난에 대처하거나 사물인터넷(IoT) 활용도를 높이는 신산업 활성화에도 위성은 필수다.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 서비스를 위해 위성 수를 1만개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이와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원웹(Oneweb)은 648개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다. 아마존도 카이퍼(Kuiper)라는 새로운 위성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우주개발은 지구 환경변화와 인류 삶의 질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잠재력이 무한하고, 이를 인식한 많은 기업가가 막대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은 우주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우주에서 건질 수 있는 혜택을 선점하려 한다.

소재 기술은 우주개발에 사용하는 핵심 기술 가운데 하나다. 지구 궤도를 도는 위성은 태양을 직면할 때와 반대편 음영 지역으로 들어갈 때 섭씨 200도 이상의 온도 차에 놓이게 된다. 이 같은 위성을 만들 때 급격한 온도 차이를 견딜 수 있는 극저온·초고온 소재 사용은 필수다. 지구 중력을 극복할 수 있는 가벼운 동시에 강성 소재도 필요하다. 몇 년 전에 있은 일본의 수출규제에서 고성능 탄소섬유복합재료는 우리나라 우주개발을 견제하기 위해 지금까지 적용하고 있는 소재다. 인공위성의 수명은 궤도를 수정할 수 있는 고압 자세제어 탱크의 성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 탱크 성능은 결국 소재와 공정 기술력이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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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 관계는 새로운 냉전으로 흐를 공산이 커지고 있다. 우주와 항공용 핵심 소재 규제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이로 인해 우주용 핵심 소재는 독자 개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뉴 스페이스의 핵심도 재사용 가능한 발사체 중심으로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에 있다. 재사용 로켓을 제작하려면 소재 기술은 물론 제작 공정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우주 발사체 제작에는 알루미늄 합금, 구리 합금, 내열 코팅 등 항공기 제작용 소재와 공정 기술을 사용한다. 스페이스X 팰컨 헤비(Facon Heavy)는 64톤을 밀어 올릴 수 있는 로켓이다. 기체는 고강도 알루미늄-리튬(Al-Li) 합금 판재를 마찰교반용접(friction stir welding) 기술을 이용해 만든다. Al-Li 합금은 기존 항공용 고강도 합금인 알루미늄-구리(Al-Cu), 알루미늄-아연(Al-Zn)합금과 비교해 5~10% 경량화가 가능한 소재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소량 구매의 경우 제대로 공급받기 어려운 경우도 발생한다.

스페이스X는 우주 발사체 제작, 발사 서비스, 위성 사업 등 다양한 사업군을 갖추고 있다. 핵심기술로 금속공학(metallurgy)을 선정, 별도 관리한다. 설립 초기부터 마찰교반용접 분야 최고 전문가를 영입하고, 소재 및 공정 기술을 내재화해 우주 발사체 비용 절감을 구현한다. 로켓 과학(Rocket Science)은 수학과 소프트웨어(SW)기술이 핵심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스페이스X의 혁신은 금속공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재 기술의 중요성은 자주 언급돼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우주·항공 분야는 더욱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40년 동안의 신자유주의 경제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는 저비용, 대량 생산에 기반한 수출 중심으로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했다. 하지만 2년 이상 겪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과 미-중, 미-러 신냉전 기류에 의해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이다. 더욱이 수출 제조업은 우리나라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산업이기 때문에 존립을 넘어 선도를 위해서라도 세계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새로운 성장은 새로운 개척지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했다. 아메리카 대륙, 증기기관, 전기,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혁신은 꿈속에서만 있었던 미지의 세계에 도전해 온 무모한(?) 개척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지구는 새로운 꿈을 꾸기에는 너무 좁아졌다. 우리 시대 개척자들이 광활한 우주에 도전하는 이유다.

미국을 비롯해 우주 선진국은 국가 주도 기술개발 성과를 민간에 보급해서 민간 주도의 뉴 스페이스를 후방에서 지원한다. 우리나라도 장기 우주개발 로드맵을 수립해 한 단계 한 단계 우주 선진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미국, 러시아 등 우주 선진국이 GDP의 0.2% 정도를 투입하지만 우리나라는 0.03%에 불과해 투자 격차를 줄이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비슷한 예산을 투입한 국가들이 줄줄이 위성 발사에 실패하거나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출연(연) 중심으로 산·학·연·관이 소명의식으로 연구개발에 임해 다양하고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 우주·항공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외에 의존해 온 소재, 공정 기술의 자립이 필수이고 핵심이다. 특히 우주·항공용 소재의 국내 자급률은 여전히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우주·항공용 소재와 공정 기술은 그 특성상 지속적인 생산과 적용 과정을 통해 높은 신뢰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항공용 금속 소재 설계용 물성 데이터 개발, 복합소재의 동일한 물성 데이터 개발 등 여러 부처에서 우주·항공용 소재 개발을 지원하고 있는데 자립 수준을 빨리 끌어올리려면 부처 간 협업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한국재료연구원이 국내 항공 OEM을 비롯한 여러 소재·부품 기업과 협업해 항공용 금속 소재 국산화 및 자립화에 집중하고 있는 배경이다.

재료연은 피로시험, 기계적 물성시험, 부식시험 등 항공용 금속 소재 시험평가 장비를 갖추고 과거 해외에 의존하던 시험평가를 국내에서 진행하고 있다. 초소성 성형과 항공용 볼트 제작 등 해외 수입 부품의 제작공정 기술을 국산화, 국내 소요량뿐만 아니라 수출할 수 있는 공정기술도 개발했다. 항공 소재 국산화와 설계허용치 DB 구축 등의 성과는 항공 소재 자립화와 공급망 안정화, 국내 항공산업과 소재산업의 질적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소재의 중요성을 우주·항공 분야에서 재차 강조하는 것이 마치 멸종 위기종 회색코뿔소에 대한 경고처럼 이미 지나간 후 느끼는 후회의 목소리는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주를 여행하고 무인항공기로 이동하는 일상은 꿈꾸는 사람의 장밋빛 계획에만 있지 않다. 우리 연구자와 기업인이 설계하고 만들어 내는 현실이자 다가온 미래다.

이정환 한국재료연구원장 ljh1239@kims.re.kr

이정환 원장은 1982년 재료연구소에서 연구원을 시작으로 융합공정연구부장, 산업기술지원본부장, 선임연구본부장, 부소장, 소장을 지냈다.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재료연구소에서 독립한 한국재료연구원으로의 원 승격을 주도했고, 2020년 한국재료연구원 출범과 함께 초대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소재부품장비 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 한국소성가공학회장, 한국엔지니어연합회 창원회장, 한국산업기술인회장, 경남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하며 지역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