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파운드리 업체 간 투자 경쟁이 본격화했다. 이르면 2~3년 안에 시장 판도가 뒤바뀔 수 있는 공격적 투자가 잇따라 이뤄지고 있다. 현재 TSMC와 삼성전자라는 '1강 1중' 파운드리 판세가 그대로 유지될지 투자 경쟁 결과가 급격한 시장 점유율 변화로 이어질지 업계 이목이 집중된다. 관건은 누가 더 빠르고 안정적인 첨단 공정을 고객사에 제공하느냐다. TSMC와 삼성전자뿐 아니라 인텔까지 가세해 첨단 미세 공정 승부수를 던졌다.
◇TSMC, 7나노 이하 공정 확대로 후발주자 따돌리기
TSMC의 올해 투자 규모는 최대 440억달러(약 52조원)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대부분 대만과 미국 내 생산 설비 구축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단순 계산하면 파운드리 신규 라인 두 개 이상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TSMC 투자 금액은 더 불어날 수 있다. 지난해에도 당초 투자 계획은 250억~280억달러였지만 실제 투자 지출은 300억달러에 달했다. 올해 투자도 삼성전자와 인텔 등과 견줘 우위를 차지한다.
이 같은 공격적 투자는 반도체 산업과 파운드리 시장 성장에 대한 강한 믿음 때문이다. TSMC가 자체적으로 내다본 올해 반도체 시장 성장률은 9% 수준이다. 파운드리만 따로 놓고 보면 20%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파운드리 시장 성장세도 가파르지만 TSMC는 자사 매출 성장률을 25~29%로 한층 높게 잡았다.
TSMC의 높은 성장 전망을 뒷받침하는 건 첨단 공정 확대에 따른 수익 개선이다. 미세 공정으로 갈수록 수익률이 높은데 최근 TSMC 행보를 보면 7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 비중을 대폭 늘리고 있다. 2020년 TSMC의 5~7나노 공정 매출 비중은 전체 41% 수준이었다. 작년 처음으로 50%를 돌파했다. 7나노 이하 첨단 공정이 TSMC의 확실한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특히 8% 수준에 불과했던 5나노 공정 비중이 지난해 19%까지 뛰었다.
TSMC 향후 투자 방향도 첨단 공정에 집중될 전망이다. 고성능컴퓨팅(HPC)에 탑재되는 첨단 공정 기반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고객을 확보, 수익을 극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3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승부수 던지는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7% 수준으로 TSMC 절반에 못 미친다. 막대한 투자에 나서는 TSMC를 추격하지 못하면 파운드리 시장은 '1강(TSMC) 1중(삼성전자)' 체제가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차세대 공정 기술 개발과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신규 고객을 확보하든 TSMC 고객을 유치하는 것 외에는 시장 판도를 흔들 방법이 마땅치 않다. 기존 삼성전자 시스템LSI 자체 물량 비중을 줄이더라도 신규 고객을 대거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삼성전자 승부수는 3나노 GAA다. 삼성전자는 상반기 내 세계 최초로 3나노 GAA 공정으로 가동할 계획이다. TSMC가 올 연말 혹은 내년 초 3나노 공정으로 양산 계획을 잡고 있는 만큼 시기적으로 앞선다. TSMC를 추격할 '골든 타임'인 셈이다.
삼성전자 최선단 공정은 대대로 삼성전자 자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나 퀄컴이 활용했다. 앞으로 삼성전자가 짊어진 과제는 고객을 추가 확보하는 것이다. 기존 고객을 유지하는 수준으로는 TSMC 시장 점유율을 뺏어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규 고객 유치는 삼성전자가 최초 양산할 3나노 공정이 얼마나 안정적이냐에 달려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3나노 차별화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초기 수율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잠재적 신규 고객에 안정적 생산 능력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첨단 공정 비중 확대는 삼성전자에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새로 구축하는 파운드리의 주력 공정에 눈길이 쏠린다. 삼성전자가 착공 준비 중인 미 테일러시 파운드리 2공장이 향후 삼성전자 첨단 공정의 핵심 거점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테일러 파운드리 주력 공정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가동 시기 등을 고려, 최선단 공정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파운드리 재진입한 인텔, 막대한 투자 결실 맺을까
최근 파운드리 시장의 최대 변수는 인텔이다. 지난해 초 파운드리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한 인텔은 발 빠른 투자 행보를 보인다. 종합반도체기업(IDM) 2.0 비전을 발표하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미국 애리조나와 오하이오주에 각각 200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금까지 공식화한 투자 금액만 400억달러다. 인텔은 유럽 등에도 반도체 생산 거점을 확보하려고 추진 중이다.
당장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을 논할 순 없지만 공격적 투자 성과가 이어지면 파운드리 시장 판도를 바꿀 새로운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
인텔 역시 첨단 공정으로 승부한다. 인텔이 지난해 발표한 공정 로드맵에 따르면 2024년 2나노(인텔 20A) 수준 미세 공정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미 고객사도 확보했다. 퀄컴이 인텔 20A 공정을 활용해 시스템온칩(SoC)을 생산할 방침이다. 인텔이 투자 계획을 발표한 파운드리 공장은 2025년부터 가동 예정인데 이 때 인텔은 1.8나노(인텔 18A) 수준 공정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로드맵 상으로는 경쟁사인 TSMC와 삼성전자와 견줘 크게 뒤처지지 않는다.
인텔은 미세 공정에 꼭 필요한 차세대 극자외선(EUV) 장비 도입도 예고했다. EUV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ASML이 성능을 대폭 향상한 '하이 NA' EUV 장비를 개발 중인데 이를 선제적으로 도입하겠다고 공식화했다. 파운드리 회사가 특정 장비 회사와 계약을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인텔의 첨단 공정 자신감을 대외에 알리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