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반도체 패권경쟁, 소통과 협력에 승패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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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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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초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센터는 '거대한 기술 경쟁-21세기의 중국 대 미국' 보고서를 통해 중국이 안면인식·음성인식·핀테크 등 인공지능(AI) 실용 분야에서 이미 미국을 넘어섰으며, AI·5세대(5G)이동통신·반도체 등 핵심 기술 분야에서도 10년 이내에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보고서에는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상황도 가감 없이 담겼다. 반도체 생산량 측면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을 추월했다. 지난 1990년 중국의 반도체 생산량은 전 세계의 1%로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15% 수준이며, 미국의 비중은 1990년대 37%에서 현재 12%로 낮아졌다. 또 기술적 측면에서도 중국이 미국을 따라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 앞으로 반도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으로 눈을 돌리면 수출의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흔히 '산업의 쌀'로도 비유되고 있을 정도로 반도체는 스마트폰, 노트북PC, 가전제품 등 우리 일상생활에서 직간접적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포스트 코로나 대응과 한국판 뉴딜의 중요한 핵심 산업으로서 타 산업을 동반 성장시키는 혁신성장의 열쇠로 여겨진다.

이처럼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 경쟁우위 해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로는 첫째 최근 반도체 산업이 초고난도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및 설계기술 기반으로 진화하고 있어 천문학적인 투자와 장시간의 기술 축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구조적으로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공급망 갈등, 일본의 핵심 품목 수출 제한 이슈 등과 같이 기업 간 기술 경쟁뿐만 아니라 국가 간 패권 경쟁이 더해져서 산업구조 변화가 더 복잡하게 얽혀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법을 찾기 위해 우리나라와 유사한 메모리 반도체 중심 산업 구조를 갖추고 있던 일본 반도체 산업을 살펴보자. 일본은 1980년대에 미국을 제치고 메모리 반도체 강국으로 호황을 누리다가 1990년대 들어와 반도체 산업 몰락을 경험했다. 몰락의 주요 원인은 정부와 민간의 협력·소통 약화와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혁신을 이루지 못한 것이 가장 크다. 현재 일본은 붕괴한 반도체 제조 기반을 재구축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장시간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일본의 사례를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패권 경쟁에 대한 지혜로운 대처가 요구된다.

우선 내부적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통해 정부와 산업계가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 외부적으로는 선도국은 물론 후발국과도 국제협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국제협력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협력국의 강점과 약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과는 우리의 강점인 제조 기술과 미국의 강점인 소프트웨어(SW)·설계·장비 기술 협력을 통해 확고한 파트너십을 끌어내야 한다.

지난해 12월 열린 '한미 반도체 파트너십 대화'가 좋은 예다. 이날 한국과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 기술개발, 인력, 투자 등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협력방안을 모색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은 미국의 반도체 민관연구컨소시엄(SRC)과 반도체 상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SRC는 미국 정부와 애플, 인텔, 삼성 등 약 15개 기업이 연간 1억 달러를 투자해 대학의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있다. SRC와의 협력은 우리 정부 및 미국 정부가 민간과 처음으로 추진하는 반도체 협력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현재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이러한 국제협력은 글로벌 수급 구조의 명확한 분석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또 전략적인 협력관계를 기반으로 지속적인 투자를 유지한다면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와 산업계의 긴밀한 소통 및 협력도 중요하다. 그동안 정부는 반도체 원천기술 확보와 고급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K-CHIPS'(Korea Collaborative & High-tech Initiative for Prospective Semiconductor research)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K-CHIPS는 정부와 민간이 50대50으로 투자해 대학과 연구소의 R&D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안정적인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까지 7년 동안 민·관 공동으로 총 1323억원을 투자하고, 고급 전문인력 1376명을 배출했다. 이 외에 특허 등록, SCI급 논문 발표 등에서 우수한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민·관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산업 현장을 공유했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며 국내 반도체 산업의 성장에 힘을 보탰다.

앞에서 언급한 하버드대 보고서를 집필한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을 통해 “미국이 중국과 경쟁하려면 전략 기술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 결과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뿐만 아니라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민·관이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해 안정적인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동시에 SRC 등 국제협력 R&D를 통해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위기에서 기회를 찾고 위상을 더욱 높일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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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장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 yhchung@keit.re.kr

◇정양호 원장은...

행정고시 28회의 정통 관료 출신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산업기술정책관, 에너지자원실장 등을 거친 후 조달청장을 지냈다. 다방면에서 쌓은 경험으로 에너지와 산업, 연구개발(R&D)에 두루 능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원장 취임 첫해에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핵심 기술개발 사업을 신속 실행하고, 코로나19에 대응해 온라인 R&D 평가시스템을 구축했다.

<한미 반도체 파트너십 대화 개요>

자료: 산업통상자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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