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최고가로 삽니다.' 자동차 창문에 명함 한 장이 꽂혀 있다. 중고차를 최고가로 사겠다는 내용이다. 알아본 가격을 얘기하면 그 금액보다 더 쳐 주겠다고 한다. 반가운 마음보다 불신이 앞선다. 중고차 시세가 있음에도 소비자가 가격을 제시하면 흥정하겠다는 얘기다.
중고차를 살 때는 허위 매물이 넘쳐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중고차 구매 경험이 있는 220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1%가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 가운데 38%가 허위 매물이다.
중고차 시장은 대표적 레몬마켓으로 불린다. 정보 비대칭성으로 저품질의 재화나 서비스가 거래되는 시장 상황을 빗댄 표현이다. 자동차에 대한 정보가 많은 중고차 매매업자와 달리 소비자는 정보에 제한적이다. '차알못'(자동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소비자는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차를 팔고 높은 가격에 살 가능성이 짙다.
최근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문제가 시끄럽다. 대다수 소비자는 환영하지만 기존 업계의 반발은 거세다.
사실상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은 이미 법적 제한이 없다. 동반성장위원회의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도 지정되지 않아 문제가 없다.
단지 사회적 합의가 남아 있을 뿐이다. 지난 6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중고자동차매매산업 발전협의회'를 발족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협의회 운영 기간은 최대 3개월이지만 여기서도 합의점 도출은 쉽지 않다.
완성차와 중고차 업계는 현대차 등 대기업의 중고차 매집 허용 여부를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다 앞서 완성차 업계가 중고차 물량을 독식하지 않기 위해 5년·10만㎞ 이하 중고차만 판매하겠다는 상생안을 내놓았지만 기존 중고차 매매 업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협의회는 중고차 업계에 주어진 사실상 마지막 협상 테이블이다. 양보 없는 기 싸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머리를 맞대고 소비자가 기대하는 투명한 중고차 시장을 여는 현실적 대안을 찾길 기대한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