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EUV 노광기 확보전' 직접 뛴다

네덜란드 출장길…ASML 방문 유력
물량 공급 논의로 TSMC 견제 포석
'초미세 칩' 생산·경쟁력 강화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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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의 본사 소재지인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으로 날아갔다. 현재 ASML이 세계 시장에 독점 공급하는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경쟁사에 앞서 확보하기 위한 행보로 관측된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8일 네덜란드 출장길에 올랐다. ASML 방문이 유력하다. ASML은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EUV 노광기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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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L 네덜란드 본사 전경

EUV 공정은 최근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많이 주목받는 기술 가운데 하나다. 웨이퍼 위에 빛으로 회로 모양을 반복해서 찍어내는 노광 공정에 쓰인다. 기존 불화아르곤(ArF) 광원보다 파장이 약 14분의 1 짧아 한층 반듯하고 균일한 회로를 형성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EUV 공정을 파운드리 사업에 적용했다. 칩 설계업체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 공장에서 10나노 이하 초미세 칩을 가장 먼저 생산,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화성, 평택 공장 외 미국 오스틴 공장에도 EUV 인프라 구축을 고려하고 있는 만큼 EUV 시스템 물량 확보가 삼성전자 반도체 성장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사업 라이벌은 대만 TSMC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50% 안팎의 점유율을 확보한 TSMC는 첨단 공정인 5나노 EUV 공정 기술과 인프라 확보 면에서 상당히 진전돼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특히 이 회사는 올해 말까지 EUV 노광기 50대를 확보, 뒤를 바짝 쫓는 삼성전자와 인프라 격차를 갑절 이상 벌리는 전략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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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ML EUV 노광장비 <사진=ASML>

EUV 노광기는 1500억원을 웃도는 초고가 장비다. 그러나 첨단 반도체 개발에 필요한 데다 ASML에서만 생산되고 있어 굵직한 고객사를 확보하기 위한 삼성전자와 TSMC 간 확보전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TSMC는 ASML에 한 해 생산할 수 있는 EUV 노광기 40여대 전량을 자사에 공급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이번 네덜란드 출장으로 장비 확보전에 직접 뛰어들면서 TSMC 견제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내년 ASML에서 공급받는 EUV 노광기 예약 대수는 10대 안팎이다. ASML의 한 해 EUV 노광기 생산량 가운데 약 25% 규모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네덜란드 방문 이후 ASML 판매 전략과 공급량이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특히 ASML이 향후 가격 협상 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TSMC 의존도를 낮춰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 부회장의 제안을 반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초고위층 경영진이 ASML 본사를 방문한 사례는 있지만 이 부회장이 직접 ASML을 찾아 관계자를 만나는 것은 무게감 자체가 달라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은 과거에도 첨단 인프라 구축을 위해 직접 움직인 바 있다. 지난 2016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증착 장비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자 이 부회장은 일본 캐논 도키와의 장기 계약을 위해 현지로 직접 날아가 장기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후 삼성디스플레이는 소형 OLED 디스플레이 패널 시장에서 80%를 웃도는 점유율을 확보했다.


강해령기자 k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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