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이 격화하고 있다. 양측은 보유 지분을 늘리면서 동시에 소액주주의 지지를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진칼이 오는 27일 정기주주총회를 열지만 장기전이 확실한 상황이다.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언젠간 출구 전략을 통해 수익을 시현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다만 KCGI가 한진그룹을 뒤흔들면서 나타난 긍정 효과도 상당한 건 분명하다. 경영진의 보폭이 빨라졌기 때문이다. KCGI가 경영 정상화, 주주 가치 제고 등을 기치로 내건 영향이다.
KCGI가 지난 2018년 11월 한진칼 경영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한진그룹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이듬해 1월 '한진그룹의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을 공개 제안했다. 부채비율을 300% 이하로 끌어내려야 한다며 보유 자산 매각을 촉구했다. 만성 적자 상태인 '칼호텔네트워크'와 'LA윌셔그랜드호텔', 노후화된 '와이키키리조트', 인수 이후 개발이 중단된 '송현동 호텔 부지'를 비롯해 '제주도 파라다이스호텔' '왕산마리나' 등 보유 자산에 대한 검토를 요구했다.
한진그룹도 대응에 나섰다. 2월에는 5개년 중장기 '한진그룹 비전 2023'을 발표했다. 2023년까지 부채비율을 400% 이하로 낮추고 매출 16조원, 영업이익 1조7000억원, 당기순이익 95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송현동 부지 매각 등 KCGI 제안도 일부 포함됐다.
다만 진전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한진그룹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KCGI가 1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그룹과 연대한 이후다. 한진그룹은 2월에서야 계열사 이사회를 열고 재무구조 개선과 이사회 독립성 강화 방안을 확정했다. 송현동 부지는 시장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시가 매입 의사를 밝혔다. 재무구조 개선 기회가 있었지만 한진그룹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건 피해 갈 수 없다.
검토되고 있는 다른 유휴자산 및 비주력사업 매각 여부도 빠른 시일 안에 결론을 내야 한다. 경영권 분쟁은 차치하고 경영진은 경영 정상화에 집중해야 된다. 이전과 같은 반 박자 늦은 경영은 참혹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코로나19'가 세계 항공 산업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상황에 경영권 방어를 위한 소모성 난타전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회사 주인은 주주다. 무능력한 경영인은 심판대 위에 서게 돼 있다.
박진형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