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두께에 원가절감 효과 커 주목...TSMC보다 한발 늦게 사업화 나서
삼성전자가 올해 반도체 패키징 신공정에 본격 투자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 안팎에서 일명 '김기남 프로젝트'로 불리는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O-WLP)' 사업화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올해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O-WLP)' 기술 안정화 및 상용화에 박차를 가한다.
2017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대만 TSMC에 빼앗긴 애플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파운드리 물량을 되찾기 위해 추진됐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애플 AP는 TSMC와 삼성전자가 나눠 생산했지만, TSMC가 FO-WLP를 상용화하면서 2016년부터 애플 물량을 싹쓸이했다. 삼성으로써는 뼈아픈 대목이다.
패키징은 가공이 끝난 실리콘 웨이퍼에서 자른 칩(Die)을 포장하는 작업이다. 외부 습기나 불순물, 충격으로부터 칩을 보호하고 메인 인쇄회로기판(PCB)과 신호를 전달할 수 있게 하는 공정이다.
팬아웃은 입출력(I/O) 단자 배선을 반도체 칩(Die) 바깥으로 빼내 I/O를 늘리는 걸 뜻한다. 반도체는 성능이 발전하면서 I/O가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칩 면적은 좁아져 I/O 단자수를 늘리기 힘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온 개념이 팬아웃이다. 팬아웃을 하면 I/O를 늘리는 동시에 반도체IC와 메인기판 사이 배선 길이가 단축돼 전기적 성능과 열효율이 향상된다. 팬아웃을 한 뒤 웨이퍼와 같은 원형 캐리어에서 칩을 패키징 하는 것이 FO-WLP다.
FO-WLP를 활용하면 값비싼 패키지 PCB가 필요 없고, 공정 횟수도 단축돼 원가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패키지 두께도 줄일 수 있다. TSMC가 FO-WLP를 세계 최초 상용화해 애플 AP를 독점 생산할 수 있었던 이유다.
TSMC에 일격을 당한 삼성은 맞대응을 준비했다. 하나는 현재 삼성전기가 추진 중인 '팬아웃-패널레벨패키지(FO-PLP)'이고 또 다른 하나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서 주도하고 있는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지(FO-WLP)'다.
FO-PLP는 삼성전기와 삼성전자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개발한 기술로, 원형 캐리어를 이용하는 WLP와 달리 사각형 패널을 이용해 패키징한다. 삼성전기는 2년 넘게 기술을 개발한 끝에 지난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냈다. 갤럭시워치에 들어간 AP를 FO-PLP로 패키징했다.
삼성전자는 FO-WLP 상용화를 준비했다. 작년 하반기 발주를 내고 천안에 FO-WLP 파일럿 라인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2020년 나올 갤럭시 S11(가칭)용 AP를 FO-WLP로 패키징하는 게 목표다. 이후 애플 물량까지 탈환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올해 양산 라인이 구축돼야 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패키징 신공정에 본격 투자할 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반도체 패키징 업계 관계자는 “성과가 좋으면 파일럿 라인을 곧바로 양산 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서 “천안에 유휴 공간이 많기 때문에 FO-WLP 라인이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천안에는 삼성디스플레이가 LCD를 만들던 공장이 있다. 삼성전기도 이 공간을 임대해 FO-PLP 라인을 만들었고,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도 천안을 활용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말 조직개편에서 테스트앤시스템패키지(TSP) 총괄을 신설했다. 기존 테스트 앤패키지(TP)센터 조직에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패키지 개발 부문을 추가한 것으로, 이 역시 본격적인 FO-WLP 투자를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삼성전자가 FO-WLP 상용화를 본격 추진하면 삼성전기와 보이지 않는 경쟁도 펼쳐질 전망이다. 삼성전기도 내년 갤럭시S11용 AP를 FO-PLP로 패키징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스마트폰에 들어갈 AP를 놓고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와 삼성전기가 기술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이후 실력이 검증된 기술로 삼성전자는 애플 AP 수주에 다시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의 FO-PLP는 권오현 당시 부회장 의사결정으로 추진됐고 FO-WLP는 김기남 부회장이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차세대 패키징 기술을 모두 준비, 시장 수요에 대응하자는 의도에서다. 삼성전자와 삼성전기가 차세대 패키징 기술 주도권을 놓고 삼성그룹 내에서 격돌하는 양상이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