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의 보도.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명검을 말한다. 고대 사회에서 검이란 생과 사를 가르는 도구다. 그러나 그 시절 야금술로는 명검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니 좋은 칼은 집안 대대로 대물림해서 보전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관용구의 쓰임새는 문화마다 다르다. 일본에서는 가문이 위기에 처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꺼내 드는 비장의 무기를 뜻한다.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에나 꺼내 들기만 하면 문제를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수단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미국 전략 컨설턴트인 리타 맥그래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위기에 처한 수많은 글로벌 기업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위기 앞에서 마음이 급해진 최고경영자(CEO)들은 구조 조정을 단행하곤 했다. 이럴 때마다 혁신은 멈춰 서고 있었다. 과연 바른 선택일까.
기업 사례를 살펴본 후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 비장의 무기가 될지는 몰라도 만능 도구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선택에 숨은 철학이 문제였다.
첫 사례는 에이번이다. 안드레아 정이 경영을 맡은 지 6년 만에 위기가 찾아온다. 2005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두 분기 연속 손실에 맞닥뜨린다. 어느 금요일 늦은 밤까지 사무실에서 고민하고 있는 그녀를 찾아온 친구이자 유명 컨설턴트인 램 차란이 “파이어 유어셀프, 하이어 유어셀프”라는 유명한 조언을 남긴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이튿날 정은 매니저 30%를 해고한다. 자신이 손수 짠 마케팅이며 투자 전략마저 손을 본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에도 에이번의 정수가 무엇인지 결코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봤다.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것.' 비록 해고와 구조조정을 했지만 그것이 기업의 사명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재점화하기 위한 선택이 돼야 한다고 봤다.
반면에 홈디포는 달랐다. 로버트 나델리는 대체로 연봉이 높은 경험 많은 고참 직원부터 해고한다. 문제는 홈디포가 단순히 건자재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었다는 데 있었다. 이들은 단순한 매장 직원이 아니었다. 겁 없이 테라스를 뜯었다가 뒷감당하지 못한 채 난처해 하고 있는 초보 손수조립(DIY)족을 너끈히 조언할 수 있는 베테랑 목수이자 배관공, 전기공들이었다. 나델리는 무엇이 그토록 홈디포를 홈디포답게 만들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실상 그러려는 노력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홈디포는 나델리를 최고경영자(CEO)로 불러들인 후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기업 실적이 나빠지면 CEO는 어느 정도의 무자비함을 보여 주고 고삐를 당기는 것이 리더십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초 상식 판단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대개는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이기 마련이다. 'C-스위트'로 불리는 명철해야 하는, 경영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원초 수준의 선택인지도 모른다.
한번 생각해 보자. 만일 당신에게 이런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무엇을 할 것인가', 두 번째는 '무얼 위해 할 것인가'이다. 비슷한 듯 보이지만 두 질문은 근본이 다르다. 과연 경영자로서 나는 어떤 질문을 하고 있는 셈일까. 안드레아 정과 나델리의 선택은 비슷한 듯 달랐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