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정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에드워드 로렌즈 관심은 온통 기상 예측 모델에 있었다. 이 날 따라 컴퓨터 모델이 버벅거렸다. 저녁때가 돼서야 결과가 나왔다. 이튿날 아침 로렌즈는 파라미터 값을 소수점 세 자리로 반올림해서 다시 돌렸다. 그러자 예측된 날씨가 전날 예측과 완전히 달랐다. 0.0001 차이가 전혀 다른 결과로 나왔다.
1972년 그는 '예측가능성:브라질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선 토네이도가 된다'는 논문을 발표한다. 사소한 움직임 하나가 예상 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다. 상대성, 양자역학과 함께 20세기 과학혁명을 대표하는 '카오스(혼돈)'라는 주제를 던진다. 그리고 '나비효과'라는 유명한 이름으로 남는다.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의 마르켈 코르스톈스 마케팅 교수는 다국적 소비재 기업을 조사했다.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연구개발(R&D) 지출과 매출 사이에 상관성이 별반 없어 보였다. 프록터앤드갬블은 매년 20억달러를 15년 동안 R&D에 쏟아 붓고도 별 효과가 없었다.
코르스톈스 교수는 사례를 모아 보기로 한다. 결론은 상식과 반대였다. 대체로 R&D 지출이 적은 헹겔, 로레알, 바이어스도르프, 레킷 벤키저 같은 곳에선 매출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왜 그럴까. 결론은 기업 전략에서 근본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초대형 기업일수록 블록버스터에 돈을 넣고 있었고, 대형 프로젝트를 설계했다. 그러나 '고위험은 고수익을 돌려준다'는 생각은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에 어떤 기업은 큰 목표를 잡지 않았다. 이곳에서 R&D 프로젝트란 고객 문제를 해결하는 한계 성능 향상을 의미했다. 레킷 벤키저는 피니시란 식기세척기용 세제를 출시했다. 업계 최초였다. 선도자 우위를 누렸다. 10년쯤 지나자 경쟁이 치열해졌다. 벤키저는 헹굼 기능을 추가한 '피니시 투인원'을 출시한다. 이렇게 업계 선두 자리를 지킨다. 또 몇 해가 지나자 이번에는 살균과 소독 기능을 추가한 '피니시 스리인원', 그다음엔 광택 기능을 추가해 '피니시 올인원'을 내놓는다. 새 제품에 소비자들은 반겼고, 매출과 수익은 더 늘어났다.
레킷 벤키저는 이것을 '로렌즈 방식'이라고 부른다. 프록터앤드갬블 혁신이 우주 법칙을 오차 없이 설명하고자 한 뉴턴 방식이었다면 벤키저 선택은 로렌즈가 말한 작은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작은 혁신이 여러 가지와 맞아떨어지면 큰 성과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의 차이였다.
코스타리카에는 도스피노스라는 굴지의 낙농회사가 있다. 거창한 유제품 가공설비를 둘러본 후 개발 책임자에게 물었다. “연구소는 어디 있나요. 한번 보고 싶어요.” 책임자 대답은 간단했다. “우린 연구소가 없어요. 그 대신 쓸 만한 기술이 없는지 학회나 콘퍼런스를 많이 다닌답니다.” 종종 기술 경영은 R&D를 숭상하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다. 기업마다 상황마다 차이가 있다. R&D가 해답일 수도 있지만 잘못된 선택일 수도 있다. 로렌즈 혁신이 말하는 것도 이것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