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제맥주협회는 9일 임시 총회를 개최해 수제맥주업체에 대한 정의와 협회 회원사의 자격에 대한 기준을 통과시켰다고 16일 밝혔다.
수제맥주 산업이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수제 맥주나 수제맥주 업체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빚어왔다. 올해 4월 초 다국적 세계 최대 맥주 회사인 AB인베브가 자회사를 통해 국내 수제맥주 회사 '더핸드앤드몰트'를 인수한 이후 소비자 및 협회 회원들 사이에는 한국에서의 수제맥주 업체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며 금번 총회를 통해 그 기준이 최종 결정됐다.
국내 수제 맥주 시장의 성장 과정에서 인수, 합병을 통해 대기업의 자본이 유입되는 것은 시장을 활성화 시킬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거대 주류회사의 인수 및 지분 투자는 자본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평이 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대형 맥주 회사의 자본에 종속되면 다양성을 필두로 한 수제맥주의 정신과 새로운 시도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막강한 유통력을 통해 시장질서를 교란하여 소규모 업체들이 고사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 약 200여 개의 맥주 브랜드를 지닌 AB인베브는 2011년 미국 시카고의 유명 수제 맥주 회사인 '구스 아일랜드'를 인수하였으며, 이후 10 Barrel, 위키드 위드 등 10여개 이상의 수제 맥주 회사에 대해 추가로 인수 혹은 지분 투자를 진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AB인베브는 대량 생산되는 라거부터 크래프트 비어에 이르는 다양한 브랜드의 맥주를 갖추면서 시장 장악력이 더욱 강화됐고 자본, 유통, 브랜드에서 상대적 열세인 소규모 양조장에게는 공정한 시장 경쟁의 기회마저 박탈되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양조협회(ABA는 '크래프트 맥주의 정의'를 △소형 △독립성 △전통성으로 정의하고 소규모 맥주제조업체들을 보호하면서 소비자의 선택권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번 한국수제맥주협회의 '한국 수제맥주업체'에 대한 기준 마련은 미국양조협회의 '크래프트 맥주의 정의'를 벤치마킹하면서 한국 실정에 맞는 기준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그 의의가 있다. 협회가 제시한 기준은 크게 소규모, 독립성 및 지역성의 3가지다.
첫 번째 '소규모'는 연간 생산량 1만kl 미만 (국내 맥주 출고량의 약 0.5%)을 생산하는 맥주 제조 업체로 한정해 특정 업체가 시장 내에서 너무 많은 영향력을 가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다. 두 번째로 '독립성'은 주류 관련 대기업의 수제 맥주 인수/합병이나 지분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해 주류 유통 시장을 문란케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주류 관련 대기업의 지분율을 33% 미만으로 제한했다.
마지막으로 '지역성'은 일부 수입사의 해외 양조 맥주의 국산 둔갑을 통한 고객 기만 행위를 막고자 주력 브랜드의 '국내 생산' 비율이 80% 이상인 맥주 제조 업체만 협회 회원으로서 가입 자격을 부여하기로 했다.
임성빈 한국수제맥주협회 협회장은 “이번 협회 회원사의 자격 기준으로 인해 수년 간 국내수제맥주 시장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일부 업체들이 제외된 점은 아쉽지만 한국에서 수제맥주업체란 무엇인지를 최초로 규정했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국내 수제맥주의 우수성을 알리고, 소비자들이 품질 높고 다양한 맥주를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이주현 유통 전문기자 jhjh13@etnews.com